남방에 철사, 묵사, 칙사, 수사 네 스님이 있었는데 사호라고 일컫는다. 수사는 선수1)인데 오수역2)의 앉은뱅이 역졸이었다. 머리를 자르고 승려가 되어 두류산에 들어갔다. 거기에서 수도하여 불경에 대해 아는 것이 많으니 먼 곳의 중들이 모두 그림자처럼 따랐다.
지난해 선수가 역적 사건에 연루되었을 때의 일이다. 금부도사가 이르지도 않았는데 선수는 앉아서 그것을 알고 제자에게 말했다.
“산 밖의 어떤 사람이 와서 나에게 잘못을 책망할 것이니 너희들은 두려워 말라.”
금부도사가 도착했는데 늙은 앉은뱅이는 한 치도 걸을 수 없었다. 여러 제자들이 소식을 듣고 찾아와 지나는 길마다 죽을 장만해서 가마를 따라가는 자가 수백여 명이었다.
전주에 도착하자 모두 가두고 수십 명만 가마를 지고 가게 했다. 서울에 와서는 그 실정이 없음이 밝혀져 즉시 석방되어 돌아가게 되었다.
아! 죄가 있든 없든 일이 역적 사건에 관계되었으니 부모형제라도 오히려 소문을 들으면 생쥐처럼 도망할 것이니 스님의 수백 명 제자는 어찌 기이하지 않은가?
철사는 원철인데 천관산에서 수도하였다. 죽음에 이르러 제자 2천여 명이 와서 보았다. 화장할 때 땔나무를 쌓아 놓고 불태우자 두 사미가 말했다.
“우리 스승이 열반하셨는데 나만 이 세상에 머물러 무엇 하리오? 스승을 따라 함께 극락세계로 돌아가자!”
하고 마침내 불 속으로 뛰어들어 죽었다. 사미가 스승을 존경하여 따라 죽은 것은 더욱 기이하다 하겠다. (『어우야담』2권, 종교편, 승려)

南方有哲師?師則師修師四僧謂之四皓. 修師者善修也. 鰲樹驛?足卒也. 落髮爲僧入頭流山. 修道多識佛經. 遠方釋子皆影徒. 前年辭連逆獄. 禁府都事未至. 修坐知之. 謂弟子曰山外有人來督過我. 爾等勿怖而已. 都事至. 老?步不能寸. 群弟子聞風至. 各以行路?粥之具. 隨藍輿而行者數百餘人. 至全州盡囚之. 只令數十人擔負而往. 到京審其無情卽放還. 噫有罪無罪事係逆獄. 骨肉之親猶望風鼠鼠. 僧之徒數百人豈不異哉. 哲師者圓哲也. 修道於天冠山. 及其死也. 群弟子二千餘人來觀. 火葬其積薪而焚之. 也有兩箇沙彌. 曰吾師滅度. 我獨留此何爲. 從吾師同歸極樂世界. 遂投火而死. 沙彌之尊師殉身尤其異哉. (於于野談 卷之二 宗敎篇 僧侶)

박상란/한국불교선리연구원 상임연구원

각주)-----------------
1)선수(善修): 1543~1615. 조선 중기의 승려. 호는 부휴(浮休). 성은 김씨(金氏). 남원 출생. 20세에 지리산으로 들어가 신명(信明)의 제자가 됨. 제자 각성(覺性)에게 부법(付法)함. 문하에 700여 명의 제자가 있었으며, 서산대사의 사제로 전통적 격외선(格外禪)을 계승하여 임진왜란 후의 불교계를 정비함.
2)오수역(獒樹驛): 남원에 있던 역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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