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즐기며 꽃을 사랑하면서 사는 것은 누구나 누릴 수 없는 즐거움이자 일종의 특권이다. 이러한 특권을 지난 40여 년 동안 누려온 차인(茶人)이 있다. 바로 청향회(聽香會) 허충순 회장이다.

전통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차 인구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웰빙시대, 건강이 최고의 덕목이 된 때문일 것이다. 시를 좋아한다고 모두 시인이 아니듯 차를 즐겨 마신다고 다 차인은 아닐 터이다. 차인이 무슨 시인이 되는 것처럼 일정한 통과의례가 필요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은은한 차향처럼 차인들만의 향기가 법하다. 부산지역 차인들의 모임인 부산차인연합회 허충순 회장. 반생을 차와 함께 하며 차문화 확산에 노력을 기울여온 차인이다. 그를 만나 차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젠 집이든 직장이든 누구나 전통차를 자주 마시죠. 차의 대중화라는 면에서 반가운 일입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서나 바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조용히 앉아 차와 마주해 보세요. 맑디맑은 차의 빛깔만큼이나 깨끗해지고 희열에 빠지며 나를 찾아가는 것에 진정한 차의 맛이 있죠.”
건강도 건강이지만 마음 다스리기에 이만한 것이 없다는 설명이다. 승방에서 면면히 차문화가 이어져 내려온 연유이기도 하다. 허 회장과 차와의 인연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차를 자주 마셔온 선친을 어릴 때부터 지켜본 영향도 컸다. 1970년대 초반 한 꽃예술전에 초대돼 온 일본인이 차 마시는 모습을 보고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게 시초. 당시만 해도 일반인에게 차문화라는 건 생소할 때였다. 이후 1970년대 중반 무렵에 지역인 20여명이 의기투합, 한국부인다도회를 결성했다. 대구의 성우 스님을 모시고 본격적인 차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전통차 자체가 일반화되지 않았던 당시에 차회란 이름부터 생소했죠. 이후부터 지역에서도 서서히 다회와 전통 찻집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사실 부산은 차와 인연이 깊다. 지금의 금강공원내 차밭골이란 곳에 차나무 자생지가 있었고 차 생산지로 유명한 하동과도 가깝다. 역사적으로도 일본으로 자주 도공들이 오간 탓에 양산 김해 기장 등에 이름난 도예지도 많다. 부산 출신의 유명한 차인들도 많다. 서예가인 오제봉 선생을 비롯, 최규용, 구혜경, 최범술, 안광석, 정상구 선생 등이 부산 차문화를 일군 원조들이다. 그 때문인지 1980년대 초부터 나타난 전통 찻집이 당시만 해도 부산에 가장 많았다고 원로들은 전한다.
부산차인연합회는 1989년 결성됐다. 차 인구가 늘어나자 올바른 차문화를 세우고 차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자연스런 행보였다. 초대회장이었던 원광 스님이 3개월 만에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시자 허 회장이 이어받았다. 2대까지 역임하고 7년간 이찬수 회장에 넘겨준 뒤 지난 2004년부터 다시 회장을 맡고 있다. 부산 차인의 산 역사인 셈이다.
“차인이라고 대단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행다(行茶)란 단순한 음다(飮茶)가 아니라 차와 같은 정갈한 성품과 마음가짐을 갖는 거죠. 그래서 젊은 사람들에게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허 회장은 부산에도 차회와 찻집이 이제 많이 늘어나 일반인들도 한번쯤 이 같은 차문화에 접해보길 권했다.
어떤 차가 좋을까. 안 마셔본 차가 없다는 그에게 기본적인 궁금증이 안 생길 수 없었다. “정답이 없어요.” 하긴 괜한 질문을 했나 보다. “요즘엔 6대 다류라고 해서 여섯 가지 색깔에 따라 차를 구분할 정도로 색도 다양한데다 향기, 맛이 천별이죠. 거기에 개인 기호가 다른데 어떻게 답이 있겠어요. 꾸준히 다양하게 마시다 보면 자기 몸에 맞는 차를 찾게 마련이죠.”
허 회장은 찻자리 꽃과 음악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꽃꽂이 다도(茶道) 전통예절 등을 연구하고 전파하는 단체인 청향회(聽香會) 회장으로 활동하며 2003년 『한국의 다석화』라는 책을 펴내 차문화 언저리에 머물러 있던 ‘찻자리꽃’의 가치를 널리 알렸던 면면만 보더라도, 허 회장의 관심과 도전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부산대 평생교육원 ‘다석화 지도자 과정’의 강연을 맡고 있는 것도 차문화의 외연을 넓히고자 하는 ‘도전’인 셈이다. 찻자리꼿 즉, 다석화(茶席花)란 찻자리를 장식하는 꽃을 말하는 것으로 차와 꽃을 조화시킨 종합예술이다.
『한국의 다석화』는 이규보 이거인 정철 등이 즐겼던 찻자리꽃의 역사적 사례가 풍부하게 담겨 있다. 계절별로 애용되는 찻자리꽃 작품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꼼꼼히 따져보고 있는 점도 특이하다. 이와 함께 ‘병화’ ‘분화’ ‘가화’ 등으로 나눠 꽃의 가치를 더 한층 풍요롭게 즐길 수 있는 방법 등을 자세하게 설명해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허 회장이 이끌고 있는 청향회의 주요 활동 중에서 부산 시민의 호응을 한껏 이끌어 내고 있는 게 바로 ‘음악회’이다. 작곡가 김동진 김규환 장일남 씨 등의 주옥같은 가곡이 연주되며, 음악을 사랑하는 시민이라면 누구든 무료로 입장하실 수가 있다.
“꽃과 음악은 차를 한층 풍요롭게 즐길 수 있게 하는 도반”이라고 말하는 허충순 회장은 “찻자리꽃과 음악에 순수한 열정을 쏟아 보다 나은 차문화를 다듬어 가는 데 한 몫을 담당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종욱/편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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