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힐링의 시대이다. TV에서 거리곳곳에서 흔히 마주치는 것으로도 부족해 산사에까지 힐링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펄럭인다. 좋은 일이다. 지치고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이 어찌 잘못이 있겠는가. 하지만 왠지 씁쓸하다. 힐링이 범람한단 말은 그만큼이나 지친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힐링을 말하기 전에 먼저 무엇이 우리를 지치고 힘들게 하는지를 말해야 하는 것 아닐까.

희망의 인문학이 열리고 있다. 좋은 일이다. 가난한 사람들, 그래서 삶을 포기한 사람들에게 당신의 인생이 얼마나 가치 있고 당신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를 깨우쳐 주는 일, 그리하여 다시금 생의 의욕이 샘솟게 하는 일,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하지만 이 또한 희망을 말하기 전에 먼저 무엇이 당신을 절망케 하는지를 말해야만 하는 것 같다.

우리를 지치고 힘들게 하다가, 마침내는 절망으로 몰고 가는 건 무엇일까? 가난? 아니면 질병? 가난과 질병이 문제라면 일인당 국민소득 2만 4천 불 국가에서 책임지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나라에서 여전히 가난과 질병 때문에 절망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정부를 바꾸면 될 것이다. 깊이 고민할 것도 없는 문제이다. 그런데 만약 그 무엇이 가난하지 않은 당신을 가난하다고 느끼게 한다면.......

거짓이 진실을 가리고, 궤변이 진리를 어지럽힌 지 꽤 오래되었다. 공자는 자주색이 붉은 색을 빼앗고, 번지르르한 말이 나라를 뒤엎는 걸 미워한다고 했다. 그러니 적어도 2천5백여 년 전부터 거짓과 궤변이 횡행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진실을 말하려면 먼저 거짓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희망을 말하려면 먼저 절망의 실체를 밝힐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이 당신을 지치게 하는지, 그 원인을 밝혀주지 않는 힐링은 위선이다. 어쩌면 힐링이란 이름으로, 희망이란 이름으로, 사람들을 씩씩한 노예로 돌려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시 길을 떠난다. 어디로 갈지, 어떻게 갈지, 정해진 건 없다. 그래서 ‘卍행’이라 해본다. 옛사람들의 발자취를 더듬다가 훌쩍 지금 시대로 돌아오기도 하고, 동쪽 변두리에서 놀다가 서쪽 끝으로 날아가 보기도 하자. 바리때 하나 지팡이 하나면 길 떠나는 데 무리는 없을 듯하다. 그렇게 놀다가 지치면 그만두자. 그때쯤이면 나는 많이 변해 있을 것이다. 거울에는 젊은이 대신 백발의 늙은이가 있을런지도 모른다. 아무렴 어떤가. 종착지에서 솔베이지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터이다. 그냥 도연명 말마따나 내일 일은 잊고 오늘을 즐기는 거다. 그게 거짓에 속지 않는 첫째 계명임을 믿어보자.

문명굴기(文明屈起), 중원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

황제(黃帝) 헌원(軒轅)의 시대가 열렸다. 황제가 조공하지 않는 자들을 정벌하니 모든 제후들이 와서 복종하였다. 그러나 치우(蚩尤)는 정벌할 수 없었다. 황제는 탁록(涿鹿)에서 치우와 싸워 그를 죽였다. 마침내 제후들이 황제를 받들어 천자로 모셨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황제와 치우에 관한 대략의 이야기이다. 탁록이 어디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여러 문헌들을 종합해 보면, 현재의 중국 하북성과 산동성의 경계 어디쯤으로 짐작된다. 이 경계는 황하의 하류와 중류가 나뉘는 곳이다.

고려족(高麗族)과 하화족((夏華族) : 중국 역사에는 고려족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나온다. 《논어》에 나오는 구이(九二), 혹은 구이(九夷), 구려(九黎), 구려(句麗) 등은 모두 고려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중국인은 스스로를 하(夏)나 화(華), 혹은 합쳐 하화라 불렀다. 중화(中華)란 용어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당시는 부족연맹의 시대였다. 부족들이 서로 연합하여 안위를 도모하였다. 내륙의 여러 부족들은 황제가 이끄는 하화족(夏華族)을 중심으로 뭉쳤고, 해안의 부족들은 치우가 우두머리로 있는 고려족(高麗族)을 중심으로 연합하고 있었다. 전쟁은 이들 양 연맹체의 세력이 커져서 결국 충돌하게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사마천은 이 전쟁에서 황제가 이겼다고 말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옛 역사는 치우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당시에 누가 이겼는지는 따질 필요가 없다. 승패의 결과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탁록의 전쟁에서 만약 치우가 이겼다면 우리는 아마도 북경이나 상해 어디쯤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조상이 이겼으니까. 하지만 탁록의 전쟁 이후 고려족은 동해 바닷가에서 만주로, 마침내는 반도로 밀려나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일부는 중국 남쪽에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 조상과 중국인 조상과의 최초의 전쟁에서 우린 졌다. 이를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야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알 수 있다. 무조건 우리 민족이 얼마나 훌륭하고 민족문화가 얼마나 찬란한지를 얘기하려 해서는 안 된다. 사실 블랙홀과도 같은 엄청난 흡수력으로 거대한 문명세계를 건설한 중국을 바로 지척에 두고서 민족적 정체성을 이만큼이나 지켜온 것만으로 대단한 일이다.

탁록의 전쟁 이후 중국인은 중원(中原)의 주인이 되었고 우린 변방으로 밀려났다. 중원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문명 창달의 주연이 된다는 의미이다. 지도를 펴보면 그 의미를 단번에 알 수 있다. 중원은 중국 내륙의 비옥한 평야지대를 가리킨다. 인도나 서방문화가 중앙아시아의 산맥과 사막을 넘어 동쪽으로 오면 제일 먼저 도착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문화란 다른 문화와 접촉하며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중국인은 엄청난 소화력으로 외래문명을 마음껏 흡수하면서 화려한 문명을 꽃 피울 수 있었다. 한반도에는 중원을 거쳐서 이미 중국화된 문화가 들어오는 것이다. 우리가 중원의 주인이 되지 못한 이상, 우리는 중국보다 앞서서 다른 외래문화와 접촉할 수 없었다. 그러니 언제나 중국문화의 변방에 머물러 있어야 했던 것이다.

원시에서 문명으로

▲ 황제와 치우가 싸우고 있는 모습. 오른쪽에서 두 번째 머리에 뿔이 달리고 소의 발굽을 한 자가 치우이다.
황제와 치우가 싸우고 있는 모습. 오른쪽에서 두 번째 머리에 뿔이 달리고 소의 발굽을 한 자가 치우이다.
치우는 구리로 된 머리, 쇠로 덮인 이마, 사람 몸에 소의 발굽을 하고, 네 개의 눈과 여섯 개의 손을 갖고 있었다. 뿐만이 아니라 비바람을 일으키고 안개를 내뿜었다. 치우는 전쟁의 신이었다. 지금도 중국에서 치우는 전신(戰神)으로 숭배되고 있다. 이런 공포스러운 전신을 상대로 황제는 지남차를 만들어 치우가 내뿜은 안개 속에서 정확히 목표지점을 찾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고대 신화는 상징이다. 황제가 지남철을 이용한 수레를 만들었다는 것은 문명사회에 진입하였다는 의미이며, 치우가 안개를 내뿜었다는 말은 여전히 원시시대에 머물러 있었다는 뜻이다. 황제는 인지능력을 발휘하여 과학의 힘으로 유용한 도구를 개발하였고, 그 도구를 활용하여 여전히 원시 야만상태에 머물러 있던 치우의 고려족을 무찔렀던 것이다. 황제는 중국문명의 굴기(屈起)를 상징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명과 야만을 나누었을까?

《국어(國語)》에는 이런 기록이 나온다. 지진이 발생하자 사람들이 두려워 하늘에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웅성대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태사(太史) 백양보(伯陽父)란 사람이 “두려워할 필요 없다. 이는 음양의 일일 뿐이다.”라고 하며 사람들을 진정시킨다. 땅속 깊이 양기가 팽창하면서 지표로 올라와야 하는데 음기 또한 강해 양기를 내리 누르고 있다가, 결국 팽창할대로 팽창한 양기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게 바로 지진이라는 것이다. 이런 설명은 현대과학이 설명하는 지진현상과 비교하더라도 그 과학성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 백양보의 이 말은 이미 3천여 년 전 중국인들은 과학적으로 사유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옛날에 왕들은 하늘의 대리인이었다. 하늘의 아들인 천자(天子)는 천명(天命)을 알기 위해 천관(天官)을 곁에 두었다. 천관은 천문현상을 관찰하며 중요한 사안마다 왕에게 보고하는 게 주요 업무이다. 이들은 그들의 관찰결과를 기록으로 남겼고, 그 기록은 후임자로 전해졌다. 이렇게 축적된 기록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자연의 예측불가능한 변화도 매우 규칙적인 현상이라는 사실이다. 이 규칙성의 발견은 곧 과학의 발달로 이어진다. 과학법칙이란 자연현상에서 일어나는 규칙적인 변화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규칙성을 발견하고 자연법칙을 이해함으로써 인간은 다음에 일어날 현상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예측가능성이야말로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세운 힘이다.

《주역(周易)》은 점서(占書)이다. 점을 친다는 것은 곧 미래를 예측한다는 말이다. 역리(易理)란 곧 변화의 원리이며, 변화 속의 불변의 법칙을 가리킨다. 따라서 다른 고대문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종교성이 약하고 인문주의가 강한 중국에서 역학(易學)이 발달하는 것은 필연이다. 중국인들의 세계관과 우주관, 그리고 인생관 등등이 《주역》보다도 더 응축되어 있는 책은 없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과학은 데이터가 축적되어야 가능하다. 케플러의 3대 법칙도 그의 스승이었던 괴짜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의 30년에 걸친 천문관측기록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이다. 위의 《국어》란 책에는 핼리혜성에 대한 관찰기록이 전한다. 영국의 천문학자 핼리보다도 수천 년 앞서 중국의 천관들이 먼저 발견한 것이다. 당연하다. 76년을 주기로 지구를 찾아오는 혜성의 존재를 중국인들이 몰랐을 리 없다. 중국인들은 일찍부터 기록을 남길 줄 알았고, 그렇게 축적된 기록을 통해 삶의 지혜를 넓혀갔다. 과학적 사유를 펼침으로써 미신이나 독단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한번 음하고 한번 양함을 일러 도라 한다.[一陰一陽之謂道]”

음양은 전술한 것처럼 과학이다. 도란 과학법칙이요 자연법칙인 것이다. 한 번 음하면 한 번 양한다. 한 번 낮이 되었다가 한 번 밤이 찾아오며 하루가 가고, 한 번 더위가 몰려왔다가 한 번 추워지며 한 해가 지나간다. 우주는 이렇게 음과 양이 번갈아 오고가며 온갖 변화를 만들어 낸다. 이런 깨달음은 인생에 지침이 된다. 지금 어려우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고, 지금의 화려함도 언젠가는 쇠락할 때가 오리라는 걸 알게 된다. 그러니 지금 어렵다고 좌절할 것도 없고, 지금 잘나간다고 교만해하지도 않는다. 과학적 깨달음이 종교적 미망을 깨치는 순간이다. 어디 그뿐인가.

하늘하늘 아리따운 아가씨
님의 좋은 짝이네요

요조숙녀(窈窕淑女)를 노래한 《시경》에 나오는 시이다. 요조숙녀는 하늘거리는 아리따운 아가씨를 가리킨다. 《시경》은 고대 중국인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가사 모음집이다. 그들은 진작부터 민가에서 부르던 노래가사를 채록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이 기록은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지며 중국문화의 원류가 되고 있다. 문자는 문학과 예술을 널리 전파하는 매우 유용한 도구였던 것이다.
우리의 고대에도 노래가 있었고 당연히 노래가사도 있었겠지만 전해지는 게 별로 없다. 왜 그럴까? 혹 우리말에 맞는 문자가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아마도 그럴 것이라 여겨진다.

문자가 있고 없음이 중원의 주인자리를 결정하는 기준이었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문자가 있었던 중국인이 일찍부터 문명을 일으켜 중원문화의 주인공이 되었다면, 그 문자를 빌려 써야만 했던 우리조상들은 변방의 오랑캐, 기껏해야 제후국의 지위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중국과 수교한 이래의 근래 약 30여 년이 우리가 우월감을 갖고 중국인 앞에 설 수 있었던 유일한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5천년 역사동안 우리는 단 한 번도 중국에 대해 우월감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이는 당연하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중국인이 이미 중원의 주인이 되었기에 동쪽 변방으로 쫓겨난 우리가 중국문화에 대해 우월한 기회를 갖는다는 건 지리적으로 불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또 바뀐다. 이제 다른 문명이 대륙을 가로질러서가 아니라 바다를 건너 도래하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는 중국을 통해서가 아니라 태평양을 통해 아무런 장애 없이 다른 문명과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중국이 주춤하는 사이에 바다를 통해 직접 서구의 과학기술과 민주주의를 도입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중국인 앞에서 우월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말이다.

이제는 다시 거대한 굴기를 목도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스스로 대국굴기라고 하지 않아도 우리는 두려움을 갖고 중국이 일어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은 미국이나 유럽이 느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왜냐하면 중국이 중원의 주인공이 된 이래 수천 년간 우리는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조선은 나라이름조차 중국인이 정해준 이름을 썼고, 조선의 왕은 취임과 동시에 중국황제의 재가부터 받아야만 했다. 명나라로부터 왕의 재가를 받지 못한 광해군은 명나라 환관들에게 수만금의 뇌물을 바치며 겨우 명맥을 유지하다가, 결국 명나라를 등에 업은 인조와 서인들에게 쫒겨나고 만다. 만약 우리 대통령이 미국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야만 대통령 구실을 할 수 있다면 여전히 조선시대의 제후국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한글축제

요즘 젊은이들의 말투에는 영어문법을 한국식으로 적용한 표현이 매우 많다. 흔히 “~~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라고 하는데, 한글을 썼다뿐이지 사고방식은 완전 영어식이다. 우리는 그냥 “~~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하면 된다. 이미 영어식으로 사고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면 이게 조선시대 선비들이 한문식으로 사고하던 것과 다를 게 없다. 여전히 서구문화의 변방국임을 증명하는 셈이다.

우리가 문화창조의 주인이 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한글이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중국에 대해 우리가 이만한 정도의 우월감이나마 갖게 된 것도 한글 덕분이다. 한글이야말로 우리의 문화를 꽃피우고, 그로써 세계문화 창달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자산이다. 그래서 제안한다. 한글날을 전후로 한 달간 축제기간을 갖자고. 10월은 개천절을 포함하여 민족문화에 대해 되돌아 볼 수 있는 좋은 시기이다. 한 해 농사도 얼추 마무리 짓고 날씨는 연중 가장 쾌청한 때이니 한번 놀이판을 펼쳐보는 거다. 우리 민족은 본래부터 놀기를 좋아했다.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에 우리 민족을 가리켜 음주가무를 즐겨하는 민족이라고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봄가을로 연등회와 팔관회를 열어 한 달씩 놀았다. 태조 왕건의 유언이 봄가을로 잘 놀게 해주라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탁견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민족은 놀이판만 갖춰지면 그 어느 민족보다도 신명나게 놀 줄 안다. 신명난다는 말을 한국인처럼 실감할 수 있는 민족도 드물다. 이런 놀이판이 펼쳐지면 싸이같은 한류스타는 수백 명이 나올 것이다. 기상천외한 인재들이 불쑥불쑥 튀어 나오는 걸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전 세계에서 우리의 놀이판을 보려고 몰려들 것이다. 비행기로, 배로, 자동차로, 아니면 걸어서.....브라질의 리오축제 때 모여드는 세계의 여행객을 생각해 봐라. 리오정도에 뒤지지 않을 한판 축제마당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런 게 문화의 힘이며, 이런 힘이 모여 더 화려하고 더 멋있는 문화를 만들어 낸다. 생각만으로 신명나지 않는가.

우리는 놀면서도 절제할 줄 아는 민족이다. 놀이에 절도가 있다. 2002 월드컵 때 확인했다. 단지 응원문화를 취재하기 위해 전 세계의 기자들이 서울로 날아왔다. 상상해보자. 한국의 문화를 보기 위해 전 세계의 예술가들이 한국으로 모여드는 광경을....그들은 우리의 놀이판에서 영감을 얻고 예술혼을 일깨울 것이다. 생각해보면 정말로 신명나는 일이다.

한 달이 너무 길다면 보름정도도 괜찮다. 보름정도의 축제기간을 맞추기 위해 다른 국경일은 모두 휴일 아닌 것으로 해도 괜찮다. 긴 역사속에서 생각해 보면 개천절이나 한글날보다 더 의미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면 한글날 전후로 옮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여튼 해보자. 이제는 자동차 몇 대 더 팔고, 스마트폰 몇 개 더 팔아야 사는 시대가 아니다. 문화는 쉽게 짝퉁을 만들 수도 없다. 삼성 스마트폰이 나오면 한 달도 안 되어 짝퉁이 시장에 나온다. 막을 수도 없다. 아니 추월당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문화는 그들이 모방하면 할수록, 짝퉁을 만들어내면 낼수록 값이 더 나간다. 이제부터는 문화의 힘으로 살아야한다. 문화는 돈을 벌어 주면서 재미와 자존감을 높여준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기업가들의 말보다는 예술가나 문학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기업가의 말을 듣지 말라는 게 아니라, 제발 문화와 예술, 그리고 인문학에 눈을 뜨라는 말이다. 기업을 위해 쏟아 붓는 예산의 만분의 일, 과학기술에 투자하는 예산의 백분의 일만 인문학과 예술에 투자하면 그 천만배의 투자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모르면 정말로 돌대가리이다.

-김문갑 철학박사/충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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