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의 달그림자’에는 대주혜해(大珠慧海) 선사가 처음 발심하여 마조 선사를 만나 수행의 바른 길로 들어선 기연과 후학을 제접하는 선사의 일면과 공부의 완숙함이 담겨 있다. 특히 마조 선사를 친견했을 때 바로 심요(心要)를 얻고, 6년을 시봉하며 더욱 철저하고 정밀하게 다듬은 대목은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공부에는 반드시 공부를 이루어 낼 기량과 선지식을 만나는 기연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무착(無着) 스님이 문수(文殊)보살을 친견하듯이 하고, 선재(善財) 동자가 53선지식을 친견하듯이 한다면 기연 또한 내 마음에 있는 것이니 만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종래는 발심이 그 첫째가 되는 것이다.

건주(建州) 땅에 대주혜해(大珠慧海) 선사가 계셨는데 성은 주(朱)씨요, 월주 대운사의 도지(道智) 화상 밑에서 수행했다. 처음에 강서(江西)로 가 마조 선사를 만났다. 마조 선사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월주 대운사에서 왔습니다.”
“여기 와서 무슨 일을 하려는가.”
“불법을 구하러 왔습니다.”
“자기의 보배 창고는 돌보지 않고 가산을 던져버리고 다니면서 무엇을 하려는가? 나에게는 한 물건도 없는데 무슨 불법을 구하는가?”
대사가 절을 하고 물었다.
“어떤 것이 저의 보배 창고입니까.”
“지금 나에게 묻는 것이 그대의 보배 창고이다. 온갖 것이 구족하여 조금도 모자람이 없으며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다. 어째서 밖에서 구하려 하는가.”
대사가 그 말끝에 자기의 근본 마음은 알거나 깨닫는데 의하지 않는 것임을 알아차리고, 뛸 듯이 기뻐서 절하고 사례한 뒤에 6년 동안 시봉을 하였다.
그 후 은사가 나이가 많아 돌아가시자 은거하고 바보 행각을 하며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을 지었다. 그것을 조카 상좌인 현안(玄晏)이 훔쳐다가 마조 선사에게 바치니, 마조 선사께서 보고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월주에 큰 구슬이 있는데, 둥글고 밝은 광명이 자유로이 비치어 막힌 곳이 없다.”
대중 가운데 대사의 성이 주 씨임을 아는 이가 있어서 서로 알게 되어 다투어 월주로 가서 의지하니 대사가 말했다.
“선객들이여! 나는 선(禪)을 모른다. 따라서 한 법도 그대들에게 보일만한 것이 없으니 여러분은 너무 오래 헛수고 하지 말고 쉬어나 가시오.”
학인들이 점점 늘어서 밤낮으로 법을 물으니, 마지못해 질문에 대답 하는데 변재가 막힘이 없었다. 이때에 법사 몇 사람이 와서 뵙고 말했다.
“한 가지 묻겠는데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깊은 못에 달그림자를 마음대로 건져라.”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맑은 물에 얼굴을 대하는 것, 그것이 부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대중이 모두 말을 잊었다.
이때 한 법사가 물었다.
“어찌 해야 큰 열반을 증득합니까?”
“생사의 업을 짓지 말아야 한다.”
“어떤 것이 생사의 업입니까?”
“큰 열반을 구하는 것이 생사의 업이며, 더러운 것을 버리고 깨끗함을 취하는 것이 생사의 업이며, 얻음과 깨침이 있는 것이 생사의 업이며, 대치문(對治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생사의 업이니라.”
“어찌하여야 해탈하겠습니까?”
“본래 속박된 일이 없으니 해탈을 구할 필요가 없다. 바로 사용하고 바로 행함이 차별 없는 경지인 무등등(無等等)의 자리이다.”
그 법사가 말했다.
“스님 같은 분은 실로 드뭅니다.”
그리고는 절을 하고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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