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오두막 편지> <버리고 떠나기> <물소리 바람소리> <텅 빈 충만> <서 있는 사람들> <인도기행>, 지금까지 읽은 법정스님의 저서입니다.

청소년기부터 읽은 법정스님의 책은 내 자아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사람인연이든 물건이든 소유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행복을 향한 길이라고 스님은 가르쳤는데, 법정스님의 열렬한 독자였던 난 이 말에 공감하고 나름 실천하며 살아온 편입니다.

2010년 3월 11일 법정스님이 입적하고, 스승을 잃은 제자처럼 허전했었습니다. 그러던 찰나 <법정스님의 의자> 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왔고, 스님이 돌아온 것처럼 반가운 마음을 안고 극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법정스님의 의자>(한국, 2011)는 임성구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영화는 법정스님 생전에 촬영했던 인터뷰 장면과 영상 법문, 법정스님 사후 지인들의 인터뷰, 특별한 에피소드에 대한 재연 등으로 구성되는데, 법정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보여주는 데 포커스가 맞춰져 있습니다.

법정스님은 생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주거 공간 같은 것은 될 수 있으면 단순해야 해요. 공간이 단순해야 어떤 광활한 정신 공간을 지닐 수 있어요. 이것저것 가구 같은 것을 잔뜩 늘어놓으면 그 안에 틀어박혀서 개운치가 않잖아요. 근데 아무것도 없는 빈 방에 있으면 전체적인 자기, 온전한 자기를 누릴 수가 있어요. 무언가를 갖게 되면 거기에 붙잡힌다고, 말하자면 가짐을 당하는 거지요. 그런데 가진 것이 적으면 홀가분해요. 매인 데가 없으니까 텅 빈 상태에서 충만감을 느끼는 거예요.”

정신의 자유로움과 소유는 반비례하는 관계다 보니 스님은 물질적 풍요로움보다는 정신의 자유로움을 추구했고, 무소유 정신은 이런 생각에서 생겨난 것이었습니다.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인 현장스님의 인터뷰에서도 무소유 정신의 철학적 바탕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다른 것은 다 버리고 놔 버릴 수가 있었는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은 가장 버리기 어려웠다, 이런 말씀을 하시거든요.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가장 단순한 데서 찾죠. 가장 단순하고 절제된 이런 삶 속에서 찾을 수가 있는데 사신 공간을 당신의 철학에 맞게끔 정돈하고 사셨어요. 그리고 이런 것이 넘쳐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참지 못하고 바로 없애 버리고 그런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그 자리를 떠나버렸죠.”

법정스님이 생전에 살았던 불일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방 안 풍경이었습니다. 하얀 벽지로 된 텅 빈 작은 방 풍경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엇인가로 가득 채워진 방만 보다가 빈 방을 봤을 때의 충격은 꽤 컸습니다. 그런데 그 풍경 속에서 정말 텅 빈 충만이 느껴졌습니다.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는 순간을 체험했습니다. 방 안을 비울수록 채워지는 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채웠습니다. 

이 경험 후 나는 쌓이는 물건은 수시로 정리하면서 방 안 풍경을 단출하게 하려고 노력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습관은 생활에서도 계속 됐습니다. ‘단순하게 살라’는 모토 아래 사람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귀고, 또한 문어발식 인관관계는 지양하고 있으며, 소비를 줄이니까 경제적으로도 자유로워지는 것 같고, 물론 하루에 할 수 있는 일도 최소한으로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떤 가톨릭 수도원에서는 한 달에 두 차례씩 사물을 스스로 공개하는 규칙이 있다네, 그러니까 그 말이 무슨 소리인가 하면 남 앞에 내놓기 전에 스스로 알아서 가질 것만 가지라는 거지. 갖지 않는 것이 부자거든. 많이 가질수록 가난한 것이고, 그런 도리를 알아야 하는데, 그래야 자유롭지,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이런 생각으로 사셨던 스님은 뭘 계속 쌓아 둔다는 것 자체를 불편해해서 뭐라도 좀 쌓이면 정리하고 없애버리면서 사셨다고 합니다.

법정스님이 손수 지어 살았던 불일암엔 지금 맏상좌인 덕조스님이 생활하고 있는데 댓돌 위에는 하얀 고무신이 가지런히 놓여있습니다. 덕조스님은 스승을 공경하는 의미에서 법정스님이 생전에 신었던 고무신을 말끔하게 닦아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고무신 뒤꿈치엔 기운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옆에는 장작으로 만든 의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의자는 가벼운 사람이나 앉을 수 있게끔 아주 작습니다. 자신의 몸에 맞게 의자를 만들다보니 이렇게 작은 의자가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스님은 생전에 상좌인 덕조스님에게 자주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몸무게 몇 킬로그램이야, 이렇게 물으시거든요. 그 뜻이 뭐냐면, 출가할 때 몇 킬로그램이냐 그걸 물으시는 거지요. 출가할 때 몸무게 보다 더 늘어나서는 안 된다, 그런 이야기를 하세요. 그게 뭐냐면 시주물을 많이 축냈다는 이야기를 하시거든요.”

이 말 속에서 법정스님 무소유 정신의 또 다른 뿌리를 엿볼 수가 있습니다. 적게 가진 것이 정신의 행복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과 함께 스님은 신도들의 시주물에서 생활을 의탁해야 하는 승려의 신분으로서 수행자의 기본에 충실한 삶을 살았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시주물을 독화살처럼 생각하라며 한 벌의 두루마기를 40년 동안 직접 기워 입은 성철스님처럼 법정 스님 또한 시주물을 경계하면서 살았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통영 미래사에서 스승인 효봉스님을 시봉하고 있던 시절 어느 하루 법정스님은 스승에게 혼난 적이 있습니다. 설거지를 하다가 시래기 나물 몇 줄기와 밥알을 우물에 버렸는데 스승이 그걸 보고는 주워서 마시면서 다음에는 나눠 마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찮아 보이는 밥 알 몇 알조차도 시주물이기에 소중하게 여기는 스승의 정신을 이어받아 법정스님은 평생을 그렇게 살았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 ‘무소유’라는 화두를 던지고, 또 평생에 걸쳐 실천하면서 살았습니다. 40년 이상을 써온 양은 대야와 손수 만든 작고 삐걱대는 의자는 무소유 정신의 상징과 같은 물건들입니다. 또한 스님은 에세이집 '무소유'를 비롯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로 인세만도 수 십 억 원을 벌어들였지만 인세 대부분은 학업이 어려운 고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학비를 대주는 데 쓰였습니다.

스님은 죽는 순간에도 무소유정신을 실천하셨습니다. 죽음의 순간을 보면 그 사람의 일생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스님은 자신이 입던 옷 그대로 가사 한 장 덮고 장작 위에서 다비식을 치렀습니다. 천에 싸인 시체가 장작 속에서 타고 있는 인도 겐지스 강변 풍경을 사진으로 본 적 있는데 스님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중적인 스님이었지만 가난한 인도 사람처럼 그렇게 죽음을 맞았습니다. 무소유를 실천하면서 살아온 스님의 삶과 참 어울리는 죽음이었습니다.

효봉스님의 제자였던 고 박완일 법사(전 전국신도회 회장)는 이렇게 무소유 정신을 실천하면서 살아온 법정스님의 삶을 이렇게 정리하였습니다.

“중답게 살다 갔지. 더 미화할 것도 없고 격하할 것도 없고 중답게 살다가 중답게 갔어.”

세간에 ‘무소유’라는 화두를 주었던 법정 스님의 마지막 한 줌은 지금 불일암 앞마당 후박나무 아래 뿌려져 있습니다. 스님의 유언에 따랐지요. 불일암에 처음 왔을 때 법정스님은 마당에 핀 벚꽃을 보면서 정다운 마음이 들어 이 곳에 정착했다고 합니다. 또한 길상사 법회에서는 자신이 다 못한 이야기는 새로 돋아나는 꽃과 잎들이 전하는 거룩한 침묵에서 찾으라고 하셨는데, 자연과 더불어 소박하게 사셨던 스님과 어울리는 마지막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나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다큐멘터리’ 라는 장르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감독이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얘기가 만들어질 수 있는데 <법정스님의 의자>는 일대기에 초점을 맞추고 영상법문, 재연, 인터뷰 등으로 채워졌는데, 아쉬운 점은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새로운 것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책에서 본 것이나 들었던 법문이나 기사 등을 통해 익히 알던 얘기들을 그냥 총 정리 해놓은 느낌이었습니다. 일대기를 다루려다보니 누구나 다 아는 얘기를 중언부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스님의 체취를 느끼고 싶었는데 그게 좀 미약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은주/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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