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먼 곳으로 다녀야했던 내게는 산길과 신작로의 추억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주로 산길로 다녔지만 비가 많이 와 길이 없어진 장마철이거나 많은 눈이 내려 쌓인 겨울철에는 비교적 안전하다는 이유로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졌다는 신작로를 이용하기도 했다. 그 신작로를 터덕터덕 걷다가 운이 좋은 날에는 소나 말이 끄는 수레, 즉 구르마를 타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소나 말의 느릿한 발걸음과 길게 늘어져 졸음을 불러오기도 하는 마부의 시조가락이 어우러진 나의 소년 시절은 지루한 낭만의 여정으로 떠오르곤 한다.

그때 만났던 구르마들은 대부분 네 바퀴를 갖고 있었다. 거의 둔탁한 쇠바퀴였고, 어쩌다 고무로 만든 바퀴를 달고 있는 경우에는 마부의 자부심어린 자랑이 따라오곤 했다. ‘서울에서 막 나온 고무바퀴’ 운운의 그 자랑 속 서울은 내게 호기심 섞인 환상을 불러내는 이상향일 수밖에 없었다. 대학에 다니기 위해 시작한 서울 생활을 통해 그 환상은 처절하게 무너졌지만, 그럼에도 경상도 사투리가 섞여 있던 것으로 기억되는 그 마부의 눈빛은 아직도 아련한 환영처럼 떠오른다.

이 아침 갑자기 그 수레와 바퀴들이 떠오른 것은 비구니 호계위원 관련 법안이 네 번째로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다른 종교와는 달리 석가모니 당시부터 비구니를 포함하는 혁신적인 이부승제가 확립되어 있던 불교가 이천 오백년의 역사를 보내면서도 여전히 석가모니 당시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 절망감이야말로  요즈음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일들로 참담해진 마음을 더 아프게 압박해온다.

석가모니 당시의 불교는 브라만을 정점으로 하는 인도사회에 존재하던 신분차별을 근원적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혁신적인 대안이었고, 그 상징 중의 하나가 여성의 출가를 인정하는 이부승제의 확립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여성이 승단에 합류함으로써 빚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비구니 팔경법’ 같은 율(律)을 함께 제정해 두었고, 그것을 통해 비구승단과 비구니승단 사이에 건강한 독립과 협력을 꾀하고자 했다.

상좌부불교의 계율만을 수지하는 남방불교의 전통을 계승한 미얀마나 태국 등에서 독자적인 비구니 승단의 위상을 조금 낮게 설정하고 있는 현실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대승계 또는 보살계를 동시에 수지하는 북방불교는 분명히 이부승제를 넘어서 우바새와 우바이를 포함하는 사부승제를 근간으로 삼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비구니 호계위원을 받아들이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비구승 중심의 종회의 행태를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굳이 이해하자면 여전히 비구니스님과 재가중들을 자신들의 철저한 통제 아래 두겠다는 기득권 지키기 말고는 없다.

여성 대통령과 대법관, 장군이 나오고 있는 21세기 초반 한국 상황 속에서 여전히 남성인 비구승만이 총무원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이다. 절대적인 유일신을 전제로 하여 그와의 소통 구조 속에서 신부라는 매개체를 설정해야만 하는 가톨릭 같은 이웃 종교의 경우에도 수녀를 온전한 성직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고, 개신교에는 이미 여성 목사가 배출되고 있다. 하물며 출발 당시부터 모든 신분의 철폐를 전제로 했던 불교가 여전한 남녀차별과 재가자 차별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반불교적 현상이다.

물론 수행 과정에서 출가자들이 보일 수 있는 승가공동체에의 헌신에 대해 우리는 충분한 존경심으로 귀의해야 한다. 수행을 중심에 두는 온전한 공동체에 속한 구성원으로서의 스님은 비구와 비구니 모두 그 수행에의 헌신 정도로 평가받아야 마땅하고, 사판승들의 경우에도 그것에의 기여 정도로 평가받아야만 한다. 동시에 유마힐이 상징하는 재가자들의 수행과 깨달음 가능성에 대해서도 당연히 석가모니 붓다와 그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충분히 인정하고 두려워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한국불교에 미래가 있다.

박병기/한국교원대학교 교수, 동양윤리교육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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