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입은 석불좌상은
우리 민족 부처님 상징
문화재 지정 안됐지만
사료적 가치 매우 커

경기도 분당시 정자동과 경기도 광주시 오포면을 걸치고 있는 불곡산(佛谷山)은 높이 344m로 정상까지 2시간 정도가 걸려 분당 시민에게 산행 장소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가벼운 산행을 위해 찾는 불곡산 입구에 작지만 기도 도량으로 유명한 골안사가 위치해있다.

▲ 골안사 대웅전. 앞에 불곡산 등산로가 위치해 있고 24시간 개방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대웅전을 찾는다.

 

본래 불곡산은 이름 없는 산이었다고 한다. 다만 이름 없는 산에 불곡사라는 절이 있을 뿐이었다. 1973년 어느 날 공수부대가 훈련 도중 불곡사를 지나가다가 도량 마당에서 쉬게 됐고 공수부대의 장교 한 사람이 도량에 있는 스님을 찾아가 “군 지도상에는 이곳이 불곡사라고 표시돼 있을 뿐 산 이름이 표시되지 않아서 부대가 집합하기 힘들 때가 있다. 스님은 이곳에 살고 계시니 여기 산의 이름을 정해주시면 안 되겠는가?”라고 부탁했다. 스님은 한참 생각하다가 “여러분이 쉬고 계신 곳이 불곡사 도량이니 산 이름을 불곡산으로 하는 게 어떻겠냐?”라고 말했고 그 장교는 고개를 끄덕이며 군 지도에 산 이름을 불곡산으로 표시했다고 한다. 이후 분당시가 신도시로 개발되면서 산 이름이 불곡산으로 굳어졌다. 군 장교에게 불곡산이라는 산 이름을 알려준 스님이 바로 골안사 주지 성오스님이다.

▲ 골안사 석불좌상은 한복을 입고 왼쪽가슴에 꽃장식을 달고 있는 등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불곡사는 성오스님이 분당 신도시로 개발되면 그 전 이 지역 명칭인 ‘골안’이 사라질 것을 아쉬워해 골안사로 개명했다고 한다. 골안사는 창건된 지 약 250여 년 된 조선 후기 사찰로 알려졌다. 하지만 창건기가 따로 전하지 않고 있다. 도량이 작고 분당 신도시로 개발되기 전에는 접근성도 용이하지 않아 오랜 기간 사찰에 기거하는 스님이 없었다. 그래도 사찰은 계속해서 그 명맥을 유지했다. 골안사 신도인 성효정 보살과 당시 마을 주민인 이상갑 처사가 스님이 기거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사찰을 유지하는데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1972년 경 현 주지 성오스님이 골안사로 오게 된다. 성오스님은 은사스님인 정공스님에게 ‘골안사에 머물러라’는 말을 듣고 골안사로 오게 됐다고 한다. 그때 스님은 10대의 어린 나이였다.

성오스님은 골안사에 오고 나서 원력을 세워 중창불사에 착수한다. 그전까지 골안사 운영에 큰 힘을 썼던 성효정 보살과 이상갑 처사 등의 활동도 스님에겐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아직 10대인 스님에게 벅찬 일도 많았다. 당시 불곡산에는 군부대들의 훈련이 많았다. 당시 군부대는 원활한 훈련 공간 확보를 핑계로 골안사 대웅전을 제외한 요사채, 산신각 등을 부셔버렸다. 성오스님은 당시 골안사의 소재지인 경기도 광주 낙생면사무소로 가서 항의 했지만 공무원들은 스님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때 적극적으로 스님을 도와준 분이 바로 재단법인 선학원 13대 이사장 범행스님이었다. 범행스님은 직접 골안사를 찾아와 성오스님을 격려하는 등 스님의 불사에 적극적인 관심과 애정을 보였다. 이후 범행스님이 선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하자 성오스님은 골안사를 선학원으로 등록했다.

▲ 골안사 입구에 위치한 보살조각상. 석불좌상과 같은 재질의 돌로 만들어졌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골안사는 작은 도량이고 기거하는 스님이 부재하던 시기도 길었다. 하지만 골안사는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했고 분당 지역의 소문난 기도도량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2공익계 주심포 양식의 건물로 조선 후기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대웅전 안에 석불좌상이 봉안돼 있다.

성오스님은 “골안사 대웅전 석불좌상은 다른 사찰과는 달리 ‘우리 민속 부처님’이라고 할 수 있다”며 “부처님께서는 우리 고유의 한복을 입고 있고 좌측 가슴에는 꽃무늬 장식이 달려있다”고 설명했다. 스님은 “1974년 대웅전을 중창하면서 석불좌상의 문화재 등록을 위해 당시 문화공보부에 조사를 의뢰해 들은 내용이다”며 “여러 문제로 문화재 지정은 안 됐지만 매우 가치 있는 석불좌상임에는 틀림없다”고 덧붙였다.

대부분 석불은 화강암을 다듬어 만들어지는데 골안사 석불좌상은 불곡산에 있는 돌로 만들어 진 것이라고 한다. 골안사 입구에는 석불좌상과 같은 재질의 돌로 만든 보살 조각상이 있다. 성오스님과 골안사 신도들은 이것을 석불좌상을 지키는 수호보살이라고 부르고 있다.

골안사는 분당 지역을 대표하는 기도도량으로 유명하다. 등산로에 위치한 골안사는 따로 문이 없다. 열려있는 공간이기에 등산객들은 산을 올라가다가도 자연스럽게 부처님을 참배한다. 또 골안사 대웅전 역시 24시간 열려 있다. 어느 때고 신도가 원하면 대웅전에서 기도를 할 수 있다. 독특한 모양의 골안사 부처님이 영험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작은 도량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온다. 이에 성오스님은 신도들이 기도정진에 심혈을 다할 수 있도록 ‘골안사 법요집’을 지난 23일 출간했다.

또 골안사는 지난 6월 칠성 탱화도 복원했다. 성오스님은 “골안사에 모셔진 부처님이 우리 토속신앙과 결합된 양식이다 보니 그동안 나눠져 보관되어 오던 칠성 탱화를 복원해야겠다는 원력을 세웠다”고 말했다. 골안사 칠성 탱화는 조선시대 제작 방식 그대로 복원됐으며 지난달 19일 봉정식을 가졌다.

▲ 골안사 주지 성오스님이 최근 발간한 골안사 법요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골안은 한자로 뼈골(骨) 편안할 안(安)이나 우리말로 굴곡(谷)의 안, 즉 부처님이 계신 골안이라는 의미로 주민들은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골안사는 예로부터 지역민과 호흡을 같이 해 온 도량으로, 또 미래 100년을 향해 부처님의 온기를 펼치고 있는 도량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분당 골안사=손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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