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 재단 이사회의 새로운 이사장이 취임했다. 근현대 불교사의 질곡과 함께 풍상을 겪어온 동국대학교는 어언 100년의 역사를 넘겼으니 한국 근현대 교육사에 남긴 그 족적은 새삼 거론할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동국호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눈길은 편안하지 못하다. 여전히 불안한 마음으로 안전 항해를 기원하고 있다.

동국호, 몰락 명문가의 후예 보는 듯

동국호의 긴 역사는 가문의 족보를 자랑하는 몰락한 명문가의 후예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 과거도 중요하지만 현재가 더 중요하며, 현재가 유의미하지만 내일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동국호의 行步는 전진이 아니라 답보, 아니면 퇴보였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초스피드 시대에 답보나 퇴보는 전도가 양양하지 않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 원인을 말한다. 다양한 요소들이 그 안에 담겨져 있다. 그러나 공통적인 것은 ‘주인이 없다’는 것이다. 학교 운영의 뚜렷한 주체가 없기 때문에 관리와 통제가 되지 않으며, 파벌과 독선의 희생이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종단과의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활용하지 못해 효과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종단과의 관계 개선 약속 바람직

새 이사장의 취임식에 현 총무원장 참석하여 치사를 하고, 협조를 약속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학교의 정체성을 살리고 장기적인 발전의 동기를 만들기 위해 너나없이 노력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貧女一燈의 진실한 마음만이 동국호의 내일을 비출 것이기 때문이다.

새 이사장에 취임하신 정련스님의 각오 역시 남다르다는 점에서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자 한다. 불사를 한다는 마음으로 학교를 사랑하고 가꾸신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이사진 역시 편의적이고 파당적인 시각에서 국외자가 될 것이 아니라 학교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일에 대승적으로 동참해야 할 것이다.

인사관리가 학교관리의 핵심

그러나 보다 중요한 문제는 조직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보다 과감한 인사관리에 힘써야 할 것이라 본다. 과거 신정아 사건에서 표출되었듯이 인사관리가 학교발전의 핵심이라 말할 수 있다. 정직하고 성실한 직원, 부단히 연구하여 학문적 신기원을 달성할 수 있는 교수를 많이 충원할수록 학교의 이미지가 장엄될 수 있다. 현대 사회가 이미지를 중시한다는 점, 개방된 사회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동국호가 안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쇄신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동국호의 장점인 문사철의 전통을 살리는 일도 중요하다고 본다. 실용성이나 사회과학의 중요성을 망각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못지않게 문사철의 전통을 지속시킬 수 있는 장기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동국호는 문학, 사학, 동서양의 철학, 예술, 연극영화 등 인문학을 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그 역사 역시 적지 않기에 정보화 사회의 기초를 다질 수 있다는 점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최근 문사철의 전통이 날로 衰弱해지고 있다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 구미에선 문사철이 경영학, 경제학, 법학, 행정학 등의 기초학문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서 있는 곳이 어디인가?

지난 가문의 영광이 오늘을 담보해 주지 않는다. 현재 서 있는 장소가 어디인가를 살필 줄 알아야 한다. 내일은 오늘 보다 더 찬란한 태양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과거는 있으되 오늘과 내일이 불투명하다면 지난 족보도 역시 그 빛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난 시간을 디딤돌로 삼아 희망찬 내일을 맞이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동국호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재삼 동국호의 선장에 취임하신 이사장께 축하를 드리며, 스님의 원력이 우리 모두가 기대했던 불사로 化現되길 여망한다. 무소유의 정신을 기반으로 수많은 佛種을 뿌리고 가꾸고 퍼뜨리고자 하는 원력이라면 반드시 성취되리라 본다.

차차석/동방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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