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靑潭, 1928~1971) 대종사는 경상남도 진주 출신으로 진주고등농림학교를 졸업한 후 25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불법을 배우고 이듬해 귀국하여 고성 옥천사(玉泉寺)에서 박한영(朴漢永)을 은사로 득도(得度)·수계(受戒)하고 청담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29세에 서울 개운사(開運寺)의 대원불교전문강원(大圓佛敎傳門講院)에서 대교과(大敎科)를 이수한 뒤, 부패해가는 승단(僧團)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하여 불교를 개혁, 정화하려는 뜻을 세워 50여 명의 승려들을 규합, 개운사에서 전국학인대회(全國學人大會)를 결성하였으나 일본의 관권에 의하여 무산되었다. 33세에 충청남도 정혜사(定慧寺) 선원(禪院)에서 수선안거(修禪安居) 이후 20여 년 동안 전주 선원에서 참선 수도하였다.

1954년 서울 선학원(禪學院)에서 전국비구승대회를 소집하여 불교정화운동을 주도하였고, 그 해 가을 사찰이 청정도량으로 정화될 때까지 목숨을 바쳐 싸우겠다는 결의로 약 400명의 비구와 함께 단식하였다. 이듬해 대한불교조계종 초대 총무원장에 취임, 이후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해인사 주지, 도선사(道詵寺) 주지, 동국학원 이사장을 거쳐 1966년 대한불교조계종 통합종단 제2대종정, 전국신도회 총재, 조계종 장로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8년 도선사에 호국참회원(護國懺悔院)을 건립하였고 1969년에는 불교계의 앞날을 염려하여 종단의 탈퇴를 선언하였다. 1970년 총무원장에 재임하였고 세계불교연합장로원장을 역임하였으며, 1971년 11월15일 나이 69세, 법랍 46세로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신도수경 (信徒手鏡)≫·≪잃어버린 나를 찾아≫·≪반야심경강설 (般若心經講說)≫·≪금강경대강좌 (金剛經大講座)≫·≪마음≫·≪선입문 (禪入門)≫·≪신심명강의 (信心銘講義)≫·≪나의 인생관≫·≪현대의 위기와 불교≫ 등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정의감이 컸던 청담은 출가 후에도 일제에 의해 변질된 한국불교의 전통을 회복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런 노력이 1926년 학인대회의 주도이며, 1935년 선학원의 이사로 선임된 이후로는 1939년 수좌대회(首座大會)와 그리고 1941년 유교대회(遺敎大會)를 개최하여 한국 선풍의 진작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와 같은 그의 의식은 광복 후에도 계속되어 일제의 통치에 의해 훼손된 불교계 바로 세우기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가 신앙의 진리를 탐구하고 개발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때임을 인식하여 무질서했던 종단의 행정체계를 현대화하는데 노력하였다. 그런 그의 노력은 시급히 해결하여야 하는 당면 과제와 그에 대해 종무행정, 포교, 불교교육, 그리고 불교 사회화 등 세부적인 방안으로 제시되었다.

청담은 종단의 장래가 달려있는 인재 육성을 위한 승가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방안으로 현행 강원과 선원의 교육체제를 개조하여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스승을 배출하고, 배출된 인재를 활용하여 역경사업을 주도해서는 경전의 대중화를 도모하였다. 비록 교육사업은 별다른 진전을 가져오지 못했지만 그가 주도한 역경사업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켜 1960년대 한국불교계에 역경의 분위기가 형성되고 역경원이 설립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청담은 누구보다도 미래의 한국불교에 대해 고민한 수행자였다. 특히 다가오는 21세기 한국불교의 역할에 대해 많은 관심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집약된 것이 바로 불교의 대중화와 인류를 위한 역할 증대이다.

청담은 불교가 우리 사회에서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과제가 선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불교의 사회적 역량이 높아져야 하고, 신도의식이 높아져야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한국불교가 오늘의 현실을 진단하고 부조리가 제거된 복지사회를 구현하는데 앞장설 수 있으며, 다음으로 신도의 신앙적 정화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자력신앙이 불교신앙으로 자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청담은 한국불교가 인류를 위해 노력할 것을 당부하였다. 그것은 불교가 인간 부재의 현상이 일어난 인류의 현실을 극복하고 완전한 삶을 위한 가치를 찾는 노력이다. 그래서 자비사상이 있는 불교가 인간을 바로 세우는 인간정립운동을 한다면 세계가치의 혼란이 치유되고 한국사회의 주체적 가치성도 올바로 되어 우리와 세계가 함께 빛날 수 있다는 것이다.

청담은 교와 선을 두루 섭렵하신 당대의 선지식이다. 뿐만 아니라 일제시대와 해방 후 혼란기 속에서 한국불교의 왜곡되고 타락한 모습을 일신하려는 개혁가요, 정화운동의 선봉장이었다. 그런 스님이 한 평생 수행한 것은 다름 아닌 ‘마음’이었다.

스님에게 있어서 마음이란 수행의 토대이자 수행의 대상이다. 즉 마음의 문제를 떠나 스님의 불교관을 논할 수 없고 수행관을 논할 수 없다. 그가 한평생 일관한 정화불사의 내적 원동력도 바로 ‘마음’에 대한 철학과 수행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마음에 관하여 스님은 수없는 설법을 하였고 글을 통하여 수많은 법문을 남겼다.

마음이야말로 우주의 참된 법이라는 주장에 이어 스님은 “진리가 마음이요, 마음이 부처요, 불(佛)이 신(神)이요, 신이 마음이요, 마음이 우주요, 우주가 심(心)이요, 심이 진리로 돌고 돌아가는 것이다.”라고 밝힌다. 마음과 부처와 신과 우주와 진리가 하나이다. 마음은 우주의 핵심이며, 모든 만물을 만들어낸 것도 바로 마음이라고 한다.

그뿐 아니라 스님은 현대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마음에 대한 다각적인 설명을 시도한다. 예를 들어 ‘마음은 생명이 있는 것이다.’라는 정의가 그것이다. “우리말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좀 바꾸어 말하면 ‘살아 있다’는 소리다. 즉 ‘생명이 있는 것’을 마음이라 한다.”라고 스님은 밝히고 있다. 마음은 물질이 아니다. 우주의 공간을 아무리 관찰하고 규명해도 거기에는 생명이 없다. 허공이 아무리 커도 그것은 무정물이요, 무기체로서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다. 따라서 무정물과 무기체 이전에 자유스럽게 행동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물질인 육체에서 생각이 나올 수가 없다. 육체 가운데 어느 곳에서도 배고프다는 생각이 나올 수 없다. 근본적으로 생명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즉 마음이 육체의 주인이며, 만사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생명의 속성이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와 같이 마음은 생명이 있어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기에 모든 생각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모든 생각의 주체가 되어서 그 때 그 때 그 사건에 따라 오관에 미치는 바에 의하여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있는 주체, 또 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주체가 바로 마음이다. 그러기에 하느님에도 구속되지 않고, 부처님이나 진리에도 걸려있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마음이 우주의 근원이며 생명의 뿌리이며 모든 생각의 주체이기 때문에 모두가 본래 부처이고 부처님의 지혜와 복덕을 구비하고 있는 존재이다. 중생과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생사와 열반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본래 청정한 진여의 본성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며, ‘나’이기 때문에 수행을 통하여 본래의 나를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수행은 다만 망상을 털어버리고 꿈을 꾸는 행위일 뿐 점차적인 닦음에 의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길인 점수이오(漸修而悟)의 입장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본래성불이기 때문에 본래의 그 자리로 돌아가면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스님은 일체의 분별사량과 번뇌 망념을 떠난 마음, 우주를 주재하고 불생불멸하는 마음, 생각의 주체가 되고 업보의 주체가 되는 마음을 통하여 수행의 토대를 확고히 하고 있다. 그러기에 화엄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에서 ‘조(造)’자를 빼고 일체유심으로 해석하였으며, 일체법이 다 불법이며 마음이며 부처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덕진/창원문성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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