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경》에서는 보살이 닦아야할 오행을 밝히고 있다. 오행이란 성행(聖行) 범행(梵行) 천행(天行) 병행((病行) 영아행(嬰兒行)이다. 성행은 불보살의 성인이라는 사람을 취하여 이름하였고, 범행은 청정행이라는 뜻을 따라 이름을 세웠으며, 천행은 깨끗한 도라는 뜻으로부터 이름하였고, 능히 다스려야할 병에 상대하여 이름하였으며, 영아행은 어린 아이와 같이 허물이 없음을 비유하여 이름한 것이다. 이중에서 우리가 닦아야할 불보살 성인의 행을 수행으로 삼은 것이 성인품으로 여기서는 계와 정과 지혜를 닦는 수행을 말한다.

첫째 계행을 청정히 함이니 보살은 {대반열반경}의 법문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내어 대승경전을 구하여 번뇌가 생기고 애착하게 하는 일체의 재산과 권력을 버려 선법이 자라게 하며, 재가이거나 출가이거나 위없는 진정한 보리의 도를 구하도록 계율을 지키고 수호해야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계율을 지키고 어떤 수호하는 마음을 가져야하는 지에 대해서 경에서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고 있다.

어떤 사람이 부낭(浮囊, 물에 뜨는 기구)을 가지고 바다를 건너려고 할 때 바다 속에 있던 나찰이 부낭을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 사람은 이것을 주면 내가 반드시 물에 빠져 죽을 것이 줄 수 없다고 하였다. 이에 나찰은 다시 말하기를, 그 부낭의 반, 혹은 삼분의 일, 혹은 손바닥만큼, 혹은 티끌만큼이라도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그 사람은 부낭의 조금이라도 떼어 주면 기운이 새어나와 마침내 드넓은 바다를 건널 수 없어서 물에 빠져 죽고 만다고 하면서 거절하였다는 것이다.

보살이 계율을 수호하고 지키는 것은 바다를 건너는 사람이 부낭을 사랑하고 아끼는 것과 같이 해야한다는 것이다. 설사 사중죄 승잔죄 투란차죄 바야제 돌길라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중하게 여기고 지키는데 차별이 없어야한다는 것이다.

보살이 지켜야할 계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세상에서 가르치는 계율이니 백사갈마한 뒤에 얻게 된다. 다른 하나는 바른 법의 계율이니 세상에서 나쁜 짓을 행하지 않으므로 얻는다. 또한 계율에는 비교적 무거운 죄가 되는 계율로 성품이 중한 성중계(性重戒)가 있고, 세상에서 싫어하는 일을 금하는 비교적 소소한 계율로 식세의혐계(息世議嫌戒)가 있다.

계를 지킴에는 이와 같이 세상의 재물이나 권력 등에 무상함을 알고 아끼고 집착하지 말아야 수계한 계상을 잘 지킬 수 있고 바른 법의 계율을 실천할 수 있다.

다음으로 보살은 서원을 세워 계율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살은 “차라리 이 몸을 맹렬히 타는 큰 불구덩이에 던질지언정 지나간 세상 오는 세상 지금의 세상 모든 부처님이 제정한 계율을 파하면서 찰리나 바라문이나 거사들의 여인과 더불어 부정한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차라리 이 입으로 철구슬을 삼킬지언정 파계한 입으로 신심있는 시주의 음식을 먹지 않겠습니다.…내지 차라지 잘드는 도끼로 몸을 찍을지언정 음란한 마음으로 보드러운 촉감을 탐내어 않겠습니다.”라고 서원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를 닦아야 지옥 아귀 축생에 떨어지기 때문이요, 이와 같이 계율을 수호하여 지키면 부동지(不動地)에 머물러 번뇌의 마군에 동요되지 않고 아뇩보리에 물러나지 않게 되므로 성행이 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선정의 행을 닦는 일이다.
선정의 행은 사념처로 관하여 수행하도록 한다. 여기서는 사념처중 신념처 수념처를 같이 관하고, 심념처를 관하며 법념처는 생략되어 있다.

심·수념처를 닦는 것은 보살은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관하여 머리털과 몸 속의 36물건들이 모두 부정(不淨)하고 ‘나’라고 할 만한 실체가 없다고 관하여 무아(無我)를 얻는다.
“몸을 살펴보건대 머리부터 발까지 다만 머리카락·털·손톱… 고름·피·혈관 따위가 있을 뿐이니 보살이 이렇게 진심으로 관찰할 때 어느 것이 나이겠는가. 나는 무엇에 소속되어 있으며, 어디 있으며, 무엇이 나에게 소속되어 있는가.”라고 관찰한다. 또한 이 중에서 뼈를 관하여 백골관을 얻으면 부정관이 성취된다. 이러한 관찰을 하면 재산 등 형체로 된 물건에 대한 욕망을 끊게 되고, 자신을 현혹시키는 자태의 욕망을 여의고, 보드랍게 느끼는 촉감 등의 욕망을 끊어서 부정과 무아를 얻는다. 

심념처를 관하는 수행은 식(識)이 나인가 사대(四大)가 나인가를 관하여 이런 것들이 모두 인연으로 화합하여 갖가지 업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간혹 알음알이가 나이므로 부처님들로 하여금 나에게 말하지 않게 하는가라고 하고, 또 관하니 이 알음알이가 차례로 나왔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 마치 흐르는 물과 같아서 역시 내가 아니라고 하였다. 만일 알음알이가 내가 아니라면 숨이 나인가 하고 생각하니 내쉬고 들이쉬는 숨은 바람의 성품이요 바람의 성품은 곧 사대이니 4대 중에서 어느 것이 나이겠는가. 이 몸의 지·수·화·풍대 모두 나라고 할 것이 없고 마음과 바람이 인연으로 화합하여 갖가지 짓는 업을 나타냄이 마치 주력과 환술로 짓는 것과 같다.”라고 관한다.

이와 같이 사념처가 이루어지면 탐낼 것도 화낼 것도 없다는 것이다. 누가 비난하고 화를 내고 때려도 나는 오온이 인연화합하여 온 연고임을 알아서 마음이 산란할 것도 없고 정념을 잃을 것도 없어서 감인지(堪忍地)에 머물게 된다. 감인지란 잘 참아내는 지위이니, 만일 잘 참아내지 못하면 마음이 산란할 것이고, 마음이 산란하면 바른 생각을 잃게 되며, 바른 생각을 잃으면 선하고 선하지 못한 이치를 분별하지 못한다. 정념을 잃고 바르지 못한 법을 행하므로 결국 지옥 아귀 축생에 떨어지게 된다고 한다.

이기운/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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