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철학의 관계는 크게 둘로 유형화할 수 있다. 하나는 철학에 전폭적인 주도권을 건네주고 철학적 방법으로 종교를 재단하고 설명하고 해석하는 유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종교적 현상을 보다 더 잘 설명하기 위하여 도구적인 수단으로 철학을 활용하는 유형이다.

이번에는 후자의 유형을 생각해보기로 한다. 불교를 종교 보다는 철학으로 배우게 된 필자로서는 이런 유형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서양의 여러 학설에 입각하여 이 문제를 간단하게 거론해 보기로 한다. 이런 태도는 기본적으로 종교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와 또 근대의 심리학적인 연구와 밀접하다.

종교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를 통해, 우리는 인류가 아주 오랜 원시시대부터 내면적으로 간직해온 아주 원초적이고 원형적인 종교적 발상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그러면서 자가 자신의 심적 상태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는 종교적 심리적인 측면 있다는 것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이런 발상은 일찍이 종교적 체험을 종교의 근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공통 견해이다. 이들은 어떤 특정한 철학적 체계를 기준으로 현실적으로 체험되는 종교를 설명하기 보다는, 역사와 현실적인 경험 속에 체험된 종교현상에서 출발한다. 그리하여 주어진 종교적 현상을 우선으로 하고 있다. 철학은 그런 종교적인 체험을 분명하게 하고 설명하는 도구적인 기능으로 역할 한다.

이런 경향에 속한 대표적인 사람으로 봅버민(Georg Wobbermin; 1869-1943)을 들 수 있다. 그는 역사상에 나타나 있는 모든 종교적 체험을 이해하기 위하여, 종교심리학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종교의식을 해부하여 종교의식 자체에서 종교의 본질을 직관하려고 하였다. 종교심리학적 방법이란 ‘종교심리학적 순환’과 ‘생산적 감정 이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간단하게 말하면, 자신의 종교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남들의 종교 심리적인 체험을 이해하고, 다시 남의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체험을 이해하고 이런 순환과정을 통해서 종교경험을 가능한 한 순수하게 식별해 내는 것이다. 입장을 바꾸어놓고 이해하는 방법이다.

한편, 둥크만(Karl Dunkmann; 1868-1932)은 종교를 인간의 정신적 삶 안에 있는 경험적 실재로서 고찰하였다. 그리하여 종교적인 경험들이 다른 종류의 경험들과는 다른 고유하고 특수한 것임을 비판적으로 드러내고자 하였다. 이런 그에게 있어서 핵심 주제는 초감성적인 신에 대한 경험이다. 이런 신에 대한 경험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그것은 또 현실적인 요소라는 의미에서의 필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제시한 이 과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내적 직관을 도입한다. 내적인 직관의 방법을 통해서 종교의 고유성을 정립시키려고 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신 개념을 도입하여 인간의 정신적인 활동의 전체적인 연관 속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그 결과 그는 인간의 경험 속에 주어지는 종교적인 현상들을 전제로 하여,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려고 하였다.

끝으로, 숄츠(Heinrich Scholz; 1884-1956)의 견해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그의 종교철학의 특징은 수용적(rezeptiv)이라는 용어에서 잘 드러나다. 이 말은 구성적(konstruktiv)이라는 말과 대비된다. ‘구성적’이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구성적 종교철학이란 종교철학자가 자신의 철학적 내지는 종교적인 이념에 의하여 구성한 것이다. 이와는 달리 수용적 종교철학이란 인간들에게 심리적 내지는 역사적으로 주어진 종교 현상을 대상으로 연구한다. 숄츠는 후자의 입장에 서서 현실적으로 역사적으로 우리 앞에 주어져 있는 종교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불교를 철학으로 접근하는 필자 같은 사람들에게는, 기도 등을 비롯한 불교의 각종 신비 체험에 대해서는 익숙하지는 않다. 그러나 불교가 종교의 기능을 하고 있는 이상, 종교적 체험 자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여, 그것에 대한 철학적 해명을 하려는 노력 역시 필요하다고 본다. 이 분야 역시 불교철학의 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신규탁/논설위원, 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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