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덕스님.(사진=불광사 홈페이지)

넷째, 상제례의 재가의식을 확립하였다. 불교는 우리 민족과 가장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오래 동안 동고동락을 하였지만, 현재의 우리 생활 속에서, 평생의례, 더 나아가서 상․장례 문제와 관련해서는, 가장 낮은 비중과 보잘것없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본질적인 원인은 상장례의식의 대상이 승려인지 재가불자인지에 대해서도 그 구분이 모호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불교의 정교하고 번잡한 한문 중심의 장례의식 등이 현실생활과 밀접하게 조화되어 발전되지 못하고 유리된 채 승가 중심의 의식으로만 치우쳐서 발전되어 왔다. 이 경우 재가불자는 의식의 둘러리 역할만 하게 된다. 게다가 더 나아가서 심지어 종단 내에서조차 의식에 대하여 경시하는 풍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불교의 전통이 선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불교가 21세기에 살아남으려면 끊임없는 변신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 교리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주변의 산업이나 학문과의 끊임없는 연계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불교학 연구는 지나치게 교리나 이론에만 치중해 있다. 보다 생산성이 높은 학제간 접근이나 응용불교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이 중에서 특히 상․장례문화와 관계되는 일들은 가장 생산성이 높은 불교식 벤처산업이나 불교식 산학협동이 될 수가 있다. 그것은 불교의 전통적인 다비문화가, 어떤 다른 종교보다도, 새로운 상․장례문화에 걸맞는 문화형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스님은 이 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였다. 전통을 대변하는 <석문의범> 류의 상례작법․매장작법을 전면 한글화하고, 의식전체를 대폭 간소화하였으며, 대중들이 의식 진행에 동참할 수 있도록 혁신하였다. 더 나아가 ‘재가제사의식’을 새로 확립하였다. 필자가 보기에 현재 불교식 제사를 지내는 재가불자들의 대부분은 스님의 재가제사의식을 하나의 모범사례로 하면서 각각의 형편에 맞추어 지내고 있다.

다섯째, 포살법회를 대중화하였다. 재가불자가 지켜야 할 계(戒)로는 오계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포살일(매월 8, 14, 15, 23, 24, 30일의 6재일)에는 특히 팔재계의 수지가 권장된다. 팔재계란 ‘목숨을 죽이지 말라’,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라’, ‘삿된 음행을 저지르지 말라’, ‘진실하지 않은 말을 하지 말라’, ‘술을 마시지 말라’의 오계에다가 ‘꽃다발을 쓰거나 향수를 바르거나 노래 부르고 춤추는 놀이를 하거나 또는 그런 곳에 가서 듣고 보지를 말라’, ‘높고 넓은 침상에 눕고 앉지 말라’, ‘때 아니거든 먹지 말라’ 등의 8가지를 말한다.

그렇다면, 오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따로 포살일에 팔재계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평소 생업 등으로 수행에 전념할 수 없는 재가불자가 포살일 만이라도 수행자의 청정한 삶을 본받아 실천함으로써 하루 빨리 깨달음의 세계로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인지 이 포살이 사라졌다.

스님은 이 사라진 포살의식을 대중법회로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매월 첫째 일요일 법회를 포살법회로 정하고 <포살요목>을 규정하여 본격적으로 보급하기 시작하였다. ‘보살계 10중대계’가 그것이다. 올바른 행동은 올바른 마음가짐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만이 아닌, 신구의(身口意) 삼업에 걸친 청정을 설한다는 점에서 십중대계는 매우 체계적인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지금은 많은 사찰과 신행단체들이 이 포살의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역시 스님의 안목이 돋보인다.

여섯째, 재가불교운동을 전개하였다. <우리말 법회요전>을 보면 서원편에 <법등서원>, <보현행자의 서원>이 있고 수지편에는 <화엄경보원행원품> 등 10여 개의 경전에서 추출한 주옥같은 글들이 있다. 서원하고 수지하라는 것이다. 스님에 의하면 바라밀 염송으로 시작하여 보현행자의 서원으로 회향되는 재가불교운동의 실제적 내용은 법등을 전하는 운동이다. 스님은 전법이 곧 믿음이며 전법이 최상의 수행이라고 설파한다.

스님에 의하면 법등은 반야바라밀의 법을 집집마다, 마을마다, 구역마다, 도시마다, 나라마다 전파하는 것이다. 그래서 동포들의 행복을 이끌어내고, 이 땅 위에 평화와 번영의 바라밀 국토를 성취하기 위하여 끝없이 다함없이 보현행자의 길을 가는 것이다. 보현행자는 지은 바 공덕을 널리 중생에게 회향한다. 왜냐하면 중생을 수순함은 모든 부처님을 수순함이 되며, 중생을 받들어 섬기면 여래를 존중히 받들어 섬김이 되며, 중생으로 하여금 환희심이 나게 하면 여래로 하여금 환희하시게 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중생을 부처님을 대하듯 공경하고 받드는 것이 보현행자의 삶이자 보람이기 때문이다.

일곱째, 의례형식이 일관되고도 뚜렷한 이념을 가지고 편찬되었다. 이 점 <석문의범>이 여러 불교 의식문의 조합이라는 평가와 의례의 단순한 복고적 정비라는 비판을 받는 것에 비교될 수 있다. <우리말 법회요전>을 살펴보면 궁극적으로 재가불교의 활성화에 그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말 법회요전>은 철저하게 ‘인간에 대한 무한 긍정’과 ‘부처님에 대한 찬탄과 공경’ 그리고 ‘보살행’이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편찬된다. 그 결과 법회 등 의례형식이 전후가 일치하며, 재가불자와 승려 간의 역할분담이 분명하게 되는 등 의례형식이 통일되었다.

여덟째, 근대불교 의례개혁의 미진했던 과제를 해결했다. 일찍이 만해는 불교 개혁만이 사회를 계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만해가 제시한 불교 개혁론은 현장의 목소리를 지나치게 무시한 너무 이상적이자 이론적이고 급진적인 주장이었다. 그러나 당위나 선언의 측면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용성은 대각교 운동을 통해 불교적 이상과 부합하지 않는 당시 불교계의 폐단을 개혁하고자 했다. 특히 용성은 불교를 대중화하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역경활동, 의식집의 한글화, 포교의 현대화, 한글 찬불가의 제정 등을 하였다. 용성은 각종 의식을 완전히 한글화 하고 있으며 기존의 의식들을 혁신적으로 간소화 하였다.

<우리말 법회요전>의 의례개혁은 ‘의식의 간소화, 생활화’, ‘모든 의식의 한글화’, ‘재가대중 중심의 의식’, ‘재가 상제례의식의 확립’, ‘포살법회의 대중화’, ‘재가불교운동의 전개’, ‘일관된 이념에 근거한 의례형식의 편찬’ 등으로 간략하게 설명할 수 있다. 여기서 스님은 만해가 가지고 있는 개혁의 입장에는 당위적인 입장에서 동의하면서도, 그의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지나친 이상이나 조급함은 수용하지 않는다.

반면에 용성의 경우는 다르다. 역경활동, 의식집의 한글화, 포교의 현대화, 한글 찬불가의 제정 등 용성이 주력하고 일정 부분 성공했으나, 여러 가지의 사정으로 이후 한국불교의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많은 미진한 부분이 스님에 의해서 발전적으로 해석되고 복원되며 불광운동으로 전개된다. 그 결과 <우리말 법회요전>은 이상을 지향(志向)하되 현장을 지양(止揚)하지 않으면서도 이론보다는 행동이 중시되는 특징을 가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불교의식집으로서는 드물게 근대불교 의례개혁의 미진했던 과제를 해결하면서도, 동시에 전통의 보존과 계승 그리고 현대화에 성공하였다는 세간의 평가를 받고 있다.

-이덕진(창원문성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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