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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선종, 절대자유를 위하여
풍요와 질서 대신 방외의 자유 추구
2014년 07월 04일 (금) 06:56:29 김문갑 meastree@naver.com

하루 일 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
—백장 회해


1. 가사(袈裟)는 조정의 옷이 아니고, 발우(鉢盂)는 종묘의 그릇이 아니다

고대 문명 중에 종교적이지 않는 문명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종교는 고대 문명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 속으로 편입시키는 데에 종교처럼 유효한 것도 없습니다. 아직은 미개했던 고대에 자연으로부터 인간이 느꼈을 두려움과 공포를 생각해 보면 종교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고대의 왕들은 곧 신의 대리인이었습니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태양신의 아들이고 중국의 천자는 하늘의 아들입니다. 제정일치(祭政一致) 시대에 종교는 곧 정치권력이었던 것입니다.

인지가 발달하고 과학적 성과가 축적되며 종교의 영향은 많이 줄었습니다만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을 종교는 갖고 있었습니다. 이런 특징은 종교로 하여금 원하든 원치 않든 정치적 선택을 하도록 강요하게 만듭니다.

   
▲ 조선후기 천재 화가 최북(崔北)이 그린 호계삼소도(虎溪三笑圖).
중국의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 동진(東晉)의 고승 혜원(慧遠, 334~416)은 여산(廬山)의 동림사(東林寺)에 머물며 시인 도연명(陶淵明), 도사 육수정(陸修靜) 등과 깊은 교류를 맺어 왔습니다. 세 사람의 우정은 더할 나위가 없었으니, 유(儒)・불(佛)・도(道)의 만남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도 없었습니다. 하루는 여느 때처럼 혜원이 도연명과 육수정을 배웅하러 동림사를 나섰습니다. 동림사 앞의 계곡을 호계(虎溪)라고 합니다. 혜원은 본래 이 호계를 벗어나지 않는 걸 계율로 삼아서, 호계를 벗어나면 호랑이가 울음으로 알려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날도 혜원은 도연명과 육수정을 배웅하며 호계를 내려왔는데, 그만 이야기에 심취하여 호계 앞 돌다리를 건너는 줄도 몰랐습니다. 호랑이 울음소리를 듣고서야 그들은 호계를 벗어난 걸 알았고 껄껄 웃었다고 합니다. 중국회화사에서 가장 많이 그려지는 고사 중의 하나인 호계삼소(虎溪三笑) 이야기입니다.

한(韓)나라의 절대 권력이 붕괴되고 중원은 무주공산(無主空山), 먼저 갖는 자가 주인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존주양이(尊周攘夷), 즉 중국을 높고 오랑캐는 낮다는 천하질서는 무너졌습니다. 이민족들에겐 중원에 진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입니다. 낙양(洛陽)엔 이민족들로 넘쳐났습니다. 특히 흉노(匈奴), 선비(鮮卑), 갈(羯), 저(氐), 강(羌) 등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이 중원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 역사는 이들을 오호(五胡)라고 부릅니다. 이들 비한족(非漢族) 오호와 한족이 엉켜 중원의 패권을 다투었으니, 이를 5호16국 시대라고 합니다.

자고 일어나면 황제가 죽었고, 해가 가면 왕조가 바뀌었습니다. 천하는 가장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황제도 황제가 아니었습니다. 이 시기 야심만만한 젊은 권력자 환현(桓玄, 369~404)이 당대 최고의 고승인 혜원에게 직접 편지를 씁니다. 탈속의 승려일지라도 왕에게는 경의를 표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은근한 압력이었지요. 만약 혜원의 지지를 받을 수만 있다면 천하가 모두 그에게 복종하리라는 게 환현의 계산이었습니다. 혜원은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가사(袈裟)는 조정에서 입는 옷이 아니고, 발우(鉢盂)는 종묘에서 사용하는 그릇이 아닙니다. 사문(沙門)은 속세 바깥의 사람이니 왕에게 공경을 표하게 하는 것은 마땅치 않습니다.”

사문은 세속 바깥의 사람이고 왕은 세속의 왕이니 서로 관여할 게 없다는 말입니다. 혜원은 그의 스승 도안(道安, 312~385)이 당시의 권력자들에게 어떻게 부대끼는지 익히 보았기 때문일까요? 여산의 동림사에 자리 잡으며 혜원은 일찍이 정교분리를 선언한 것입니다. 

   
▲ 도메니코 디 미첼리노, 《신곡》을 들고 있는 단테.
한편 르네상스의 여명이 밝아올 즈음 이탈리아의 단테(Alighieri Dante, 1265~1321)는 《신곡》에서 마르코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로마시대에는 세속의 권력인 황제와 정신의 권력인 교황이 서로 분리되어 평온했으나,
지금은 교권이 황제의 권력을 빼앗아 하나가 되었고
그 결과 어떤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는 혼돈의 세계가 되어버렸다.

단테에 의한다면 혼란의 원인은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황이 황제의 권력을 빼앗아 종교가 세속의 일까지 관여하는 일을 혼돈으로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혼돈으로부터 벗어나려면 교권과 왕권의 분리,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야한다는 생각입니다.

만약 하늘의 탓이라면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말이니,
인간 세상에는 정의도, 선에 대한 기쁨도 악에 대한 슬픔도 없을 것이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하늘의 탓이 아니라 인간의 탓이다.

더 이상 하나님만을 바라보지 말고, 인간의 의지로, 그 자유의지로 선택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선택의 결과 기쁨과 슬픔이 따르겠지만 이 또한 인간이 해결하여야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은 이제 그만 세속의 일에 관여하지 말고 인간의 자유의지에 맡기라는 주장이지요.

정교분리는 자유를 위한 필연이었습니다. 종교로부터 세속의 권리를 해방시키지 않고는 인간은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중세 천년은 엄숙과 경건이 지배했습니다. 사람들은 함부로 웃지도 못했고 놀지도 못했습니다. 단테가 정교분리를 주장한 것은 이러한 중세적 질곡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었던 것입니다. 이게 르네상스의 시작입니다.

단테의 정교분리가 종교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것이었다면 혜원의 그것은 정치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방향이 어느 쪽이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점에서 모두 같습니다. 세속적 자유이든 종교적 자유이든 자유를 향해 나아갔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습니다.

2.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

인류문명에서 불가사의한 성취들은 대개 종교와 권력의 만남에 기인합니다. 중국의 수・당(隋唐)시대에 불교는 권력의 전폭적 지원 아래 교세를 크게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는 초대형 사찰이 수십 개나 세워지고, 각 사찰에는 승려들이 수천 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국가의 정책이 어느 방향으로 결정되느냐에 따라 인재 또한 그쪽으로 몰리는 법입니다. 당나라의 숭불정책은 천하의 우수한 인재들로 하여금 불교에 귀의하게 하였습니다. 뛰어난 두뇌와 뜨거운 열정을 품은 많은 인재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에 의해 당대 불교는 크게 융성합니다. 엄청난 양의 불경이 번역되고, 이를 바탕으로 거대한 이론체계가 완성되었습니다. 당대의 불교문화는 대적할 게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결국 권력에의 예속으로 귀결되곤 합니다. 권력이 오래가는 게 아니듯, 이런 만남도 오래갈 수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부처님의 출가는 세속적 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이었는데, 중국 교종(敎宗)에 와서는 오히려 세속적 권력으로의 회귀와도 같은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이는 종교의 세속화를 의미합니다. 종교의 세속화 또한 어느 정도 필연입니다. 세속을 떠난 종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종교가 포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속인이며, 목표는 온갖 세속적 굴레를 벗겨주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구원(救援)이든, 불교의 해탈(解脫)이든 종교가 존재하는 근거는 세속이 있는 것입니다. 세속은 종교의 존재이유이지만, 세속화는 종교의 타락을 의미하곤 합니다. 종교가 세속권력과 결합해서 타락하지 않는 예가 없고, 결말에 이르러 불행해지지 않는 예도 없습니다. 당말(唐末) 무종(武宗)에 의한 폐불(廢佛)사건은 새삼 권력과 종교의 무상함을 느끼게 합니다.

백장산(百丈山)의 회해(懷海, 749~814)선사는 아흔이 다되도록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밭에 나가 일을 했습니다.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노스님은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제자들이 꾀를 내어 농기구를 모두 감췄습니다. 호미나 가래가 없으면 노스님도 어쩔 수 없이 쉬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지요. 제자들의 생각대로 노스님은 밭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공양을 거절하였습니다. 노스님은 말했습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

백장회해의 이 유명한 말은 흔히 노동의 신성성을 강조하는 말로 이해됩니다. 선가에서는 불문율로 여겨지지요. 그런대 이 규율은 실상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분명히 출가수행자는 노동하지 않는다고 하셨으니까요. 수행자는 노동하는 대신 탁발(托鉢), 즉 걸식(乞食)을 해야 합니다. 두타행(頭陀行)에서 탁발이 중요한 이유는 아집(我執)을 버리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내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는 것이지요.

노동을 통해 얻어진 수확은 노동한 사람의 소유물이 됩니다. 더구나 백장회해처럼 내가 일하지 않았으니 먹을 수 없다는 태도는 자기 소유에 대한 매우 강한 관념으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일부작일일불식(一日不作一日不食)’이 선가의 불문율이 된 이유는 세속적 권력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입니다. 너희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혜원이 환현의 청을 거절하고, 달마가 양무제(梁武帝)의 물음에 시큰둥한 이유인 것입니다.

자유의 대가는 가난입니다. 가난은 자유에 필수적으로 따라 오는 것입니다. 선사(禪師)들은 기꺼이 가난을 택했습니다.

두 젊은 수행자가 훌륭한 선지식(善知識)이 있다는 말을 듣고 먼 길을 찾아 왔습니다. 산 중턱에 이르러 물가에서 잠시 쉬는데 시냇물에 상추 한 잎이 떠내려 오는 것이었습니다. 상추잎을 보는 두 젊은이 얼굴에 낭패감이 스쳤습니다. 상추잎 하나라도 흘려보내는 자라면 존경할만한 선지식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지요. 두 사람은 그만 내려가자는 의견과 여기까지 왔으니 그래도 얼굴이라도 보고 가자는 의견으로 나뉘어 옥신각신하였습니다. 그러는 참에 한 늙은 중이 내려오더니 그 상추 한 잎을 들고 다시 올라가는 거였습니다. 두 젊은 수행자의 얼굴은 다시 환해지며 노스님을 뒤따라 올라갔다고 합니다.

상추잎 하나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는 정신은 권력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입니다. 백번 옷을 기워 입고, 죽 한 그릇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어야 권력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3.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바른 깨달음을 얻으려면, 사람에게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 안으로도 밖으로도, 만나는 것은 모두 죽여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나한(羅漢)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여라. 그리하여야 비로소 해탈하여 자유로울 수 있다.” 

임제(臨濟) 의현(義玄)의 이른바 살불살조(殺佛殺祖)는 일체의 관념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부모형제로 이어지는 세간의 끈으로도, 부처와 조사로 맺어지는 출세간의 사슬에도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나를 구속하는 일체의 사슬에서 벗어난 절대자유의 경지인 것입니다.

선종은 여러모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조차 버리라고 합니다. 이른바 교외별전(敎外別傳)이니, 부처님의 가르침 밖에 별도로 전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별전(別傳)이란 말은 정통이 아니란 뜻입니다. 선종은 정통이 아닙니다. 정통과 비정통을 애써 구분하는 것은 교종의 몫입니다. 교상판석(敎相判釋) 같은 게 그런 것입니다. 선종은 본래부터 정통이 아님을 표방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가에서 누가 정통이냐 아니냐 옥신각신하는 건 참으로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정통성을 따지는 건 권력의 속성입니다. 권력이 정통성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는 그 권력 행사의 정당성과 관계되기에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정통성이 확보되지 못한 권력의 행사는 강압에 불과한 게 되는 것입니다.

선종은 본래 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합니다. 당대의 교종의 사찰은 권력의 중심, 즉 수도 장안에 자리잡았습니다. 하지만 선종 사찰은 모두 산으로 들어갑니다. 이런 경향은 당말 폐불사건 이후에 더욱 가속화됩니다. 모두 권력에서 벗어나 장자(莊子)로 말하면 방외(方外)의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당대 이후 불교가 다시 권력과 손을 잡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신 불교는 방외의 자유를 꿈꾸는 자들의 고향이 됩니다. 어쩌면 이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은 더욱 충실하게 재현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래 부처교설이 지배질서를 거부하고 지배이념을 비판하는 데에서 출발하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오히려 선종이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에 가장 가까이 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선종이 정통입니다. 정통 아닌 정통. 정통을 추구하지 않아야만 정통이 되는 구조. 이 변증법에 선종의 묘미가 있습니다.

한 수좌가 조주(趙州)선사를 찾아와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조주가 물었습니다.

“자네는 여기에 와 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차나 한 잔 하게.”
다른 수좌가 조주를 찾아와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조주가 물었습니다.
“자네는 여기에 와 본 적이 있는가?”
“있습니다.”
“차나 한 잔 하게.”
이 말을 듣고 원주(院主)가 물었습니다.
“어째서 여기에 와 본 적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똑같이 차나 한 잔 하라고 하십니까?”
그러자 조주선사가 대답합니다.
“자네도 차나 한 잔 하게.”

질문과 대답 사이엔 아무런 의미연관이 없습니다. 이 양자 사이가 의미로 연결되어야만 하는 건 세속의 질서입니다. 빨간 신호등과 건너지 말라는 의미와의 관계 같은 것이 세속의 질서입니다. 세속에서 살려면 이런 질서를 지켜야만 합니다. 이 질서를 어기면 벌금을 내야 합니다. 따라서 처벌받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신호가 담고 있는 의미를 머릿속에 넣어 두어야 합니다.

선(禪)은 먼저 우리들의 뇌리에 각인된 그 의미연관부터 지우라고 합니다. 그런 다음 빨간 불이든 파란 불이든 거리낄 것 없이 길을 가로질러야 합니다. 질서를 거스르고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더러 무모한 짓입니다. 도시는 방내의 질서를 지키며 살아야 하는 곳입니다. 산속 깊은 곳이 선사들의 집입니다. 아무데든 걸으면 그게 길이고, 누우면 집이 되는 곳이 그들의 고향입니다. 이게 방외의 자유입니다. 도시의 풍요는 없지만 자연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도시의 풍요를 누리면서 자유롭고자 한다면, 그건 도둑놈 심보입니다. 결코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선택한 삶은 매우 가난한 것입니다. 그는 진실을 본 대가로 죽 한 그릇에 거적때기 같은 옷 한 벌로 지냅니다. 하지만 자유롭습니다. 하늘을 날고 총알도 피합니다. 그러니 자동차 사이를 마구 달리는 것쯤이야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정말로 그럴 수 있을까요? 분명한 사실은 진정으로 용기 있는 자만이 걸어가 얻을 수 있는 삶입니다.

-김문갑(철학박사, 충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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