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과거-현재-미래. 이렇게 인간은 ‘시간의 형식’을 통해서 세계를 인식한다. 한 개인의 삶을 두고 보더라도 그렇고, 개인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 또는 사회를 보더라도 그렇다. 지나온 과거를 뒤돌아 반성하고 닥쳐올 미래를 염두에 두면서, 현재를 계획하여 살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하기를 꾸준하고도 심도 있게 하는 과정 속에 변화도 있고
1. 총무원장 선출하는 방식을 두고 현행 간선제를 그만두고 직선제 쪽으로 가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제도의 문제는 각 종단의 종헌과 종법에 따라, 또 정당한 법 절차를 따라 시행하면 될 것이다. 또 이 땅에서 지내온 불교의 역사가 길기 때문에 그 전통을 잘 살려서 지금에 알맞게 대중의 공의를 모아 계승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총무원장 선거철을 맞이
1. 최근 ‘최순실사태’로 불리는 일련의 ‘사태’를 접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에서 그리고 지금이라는 구체적 ‘시간’ 속에서 그것을 경험하고 있다. 물론 이 ‘사태’ 자체가 복잡한 구조로 얽혀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사태&r
1. 우리의 근현대 역사 변동의 방향은 서유럽의 근현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서유럽 지역에 실재하는 근현대’라기 보다는 ‘우리들의 머릿속에 있는 서유럽’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필자가 사용하는 ‘서유럽’의 외연에는 미국을 포함하여 ‘탈아시아론’을 주
1. 논어에 「옹야편(雍也篇)」이 있는데, 이 대목은 공자와 그의 제자 옹야와의 대화로 시작된다. 이런 인연으로 훗날 이 책의 편집자는 편명을 그렇게 붙였다. 옹야의 자(字)는 중궁(仲弓)으로, 안회와 더불어 인격이 훌륭한 사람으로 스승 공자의 칭찬을 받던 인물이다. 중궁의 질문이 계기가 되어 공자는
1. 부디즘(Buddhism)이라는 용어는 유럽이 인도를 점령해가면서 저들이 만들어낸 19세기의 신조어이다. 영국이 이 용어를 만들었을 때는 인도의 특히 실론섬 지역에 팔리(pāli)어로 전승된 소위 남전(南傳) 아함부 경전을 염두에 두었다. 그러니 엄밀하게 말하면 팔리어로 기록된 니까야(Nikāya)의 전승만이 부디즘(Buddhism)이
1. 나는 직업적으로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철학 연구의 재료거리를 주로 중국 지역에서 유행했던 인간들의 지성에서 채취한다. 중국의 지성에는 유교적 전통도 있고, 도교적 전통도 있고, 불교적 전통도 있지만, 나는 주로 불교 지성의 전통에서 내 철학의 재료거리를 채취한다. 기본적으로는 실증주의적 전통에 서 있으면서 방법은 언어분석
1. 한글의 ‘종교’라는 용어는 영어 ‘religion’을 일본인들이 근대화의 과정에서 ‘宗敎’라는 한자로 번역했고, 그것을 다시 우리말로 ‘종교’라고 읽은 것이다. ‘종교’라는 용어의 발생이 서양에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이 용어에는 ‘기
1.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연구한다면서도 종학(宗學)과 학문(學問) 사이에서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물론 ‘경계’라는 것은 연구를 위한 일종의 ‘방법’으로서 임시로 설치한 것이기 때문에 절대 넘어서 안 되는 자동차 중앙분리선과는 양상이 다르다. 그러면서 그것이 일
권승들의 피폐를 그들의 문중과 함께 책에 분명히 기록해 후대에 교육시켜야개인이든 사회이든 예측이 가능한 것이 좋다. 상황에 따라 변덕을 부리면 관계 맺기 어렵다. 세상일이 변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변화란 살아있음의 증거이기도 하지만, 그 변화에는 예측 가능성, 소위 내적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저도 모르고 남도 모르게 변
수년 전부터 ‘재단법인선학원’과 ‘대한불교조계종의 총무원 사이의 관계가 날로 악화되어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국가의 법률적 내지는 불교 종단 내의 관행 등에 관해서는 이미 알려져 있으니, 필자가 재론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거듭 밝히지만, 법인(法人)에는 그 정관에 기록된 고유의 목적이 있고, 그에 따른 대한민국 민법에
"본지풍광 소식 기대된다"한국의 불교계는 음력 7월 15일로 하안거 해제를 맞이하여 각 선원마다 방학으로 들어간다. 선원의 수용인원은 천차만별이다. 해인사 송광사 통도사 백양사 등 소위 총림에 소속된 선원에서는 ‘방장’의 지도 아래 30명 내외의 선사들이 수행을 한다. 좀 더 많은 곳도 있다. 그런가하면 총림이 아닌
제한된 지면에서 다 말할 수는 없고 줄거리만 말하면, 삼국시대 이래 조선시대 까지 승려와 사찰의 통제권은 왕의 권력에 속해있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때에는 조선총독의 권한 아래에 있었다. 물론 문서화된 법령을 통해서 말이다. 이러던 불교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남한 땅에 ‘대한민국’이라는 현대 국가가 탄생하면서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지난 4월 25일 연세대 문과대학 외솔관 건물에서 ‘한국선학회 2015년 춘계학술세미나’가 열렸다. 필자는 그 학회의 회장직을 금년 1월 1일부터 2년을 임기로 수행하고 있다. 이번 세미나는 세 세션으로 나누어서 진행되었다. 선학(禪學)과 관련하여 첫째는 사상과 역사 부분이고, 둘째는 명상과 사회 부분이고, 셋째는 문학과 예술 부분이었
파헤치지 말고 끌어담아야 좋은 결과를 위한 시련으로 여겨 끝을 승화시켜야한 단체의 지도자를 뽑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학교의 총장을 뽑는 일도 그렇다. 그 이유는 많은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고, 또 전통을 이어 새 시대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을 구성하는 인적 자원으로 크게 셋을 들 수 있는데, 첫째는 동문이고, 둘째는 교수이고, 셋째는 재학
필자는 직업상 말을 할 수 밖에 없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서도 말을 해야 하고, 또 학술발표회에서 발표를 위해서도 말을 해야 한다. 물론 한 사회인으로서 사적인 자리에서나 공적인 자리에서도 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쓴 것도 말하는 것에 포함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말을 하다보면, 때로는 본의 아니게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또는
조계종의 법인법과 그에 따른 유관 기관의 법인등록 문제로 불교계가 한참 어수선했다. 이제는 등록할만한 단체들은 거의 다 등록을 했다는 것이 조계종총무원 측의 평가이다. 이 과정에서 재단법인 선학원의 등록 거부가 주목받기도 했고, 또 송담 선사의 조계종 탈종 선언도 적잖은 파장을 남겼다. 각 단체와 그에 소속된 사람들이 입장을 밝혔고 그에 따라 행동을 했으니
종교와 철학의 관계는 크게 둘로 유형화할 수 있다. 하나는 철학에 전폭적인 주도권을 건네주고 철학적 방법으로 종교를 재단하고 설명하고 해석하는 유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종교적 현상을 보다 더 잘 설명하기 위하여 도구적인 수단으로 철학을 활용하는 유형이다. 이번에는 후자의 유형을 생각해보기로 한다. 불교를 종교 보다는 철학으로 배우게 된 필자로서는 이런 유
종교철학의 방법론적 변천도 철학사의 사조 변천과 일정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은 여러 사례들이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역시 고전적인 그리고 궁극적인 물음 자체는 변함이 없으니, 그것은 진리에로 향하는 그 방향성이다. 즉, 바른 지식이란 무엇인가에로 향하고 있다. 유럽인들에게 그들의 유일한 종교인 기독교는 현실적으로 그들의 삶 속에 ‘있는 것&rsquo
지난 3월 20일 열린 제197차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에서는 재단법인 선학원의 권리 보장을 명시하는 총무원법 제24조를 삭제하고, 2013년 제정한 ‘법인법’ 시행을 1년간 유보한다는 계획을 3개월로 단축 수정하여 통과시켰다. 이에 맞서 선학원 측에서는 3월 26일 임시 이사회를 개최하여, 임원진 전원이 조계종 승적을 철회한다는 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