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면서도 순수한 감성을 갖고 있는 영화가 보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의 순수한 믿음을 다뤘던 과 같은 영화에 목말랐었습니다. 이번에 만난 영화는 이런 목마름을 채워주기에 적당했습니다. 아이들이 등장하고 순수한 정서가 지배적이고, 거기다 불교적 가르침이 있고, 완벽한 불교 영화였습니다.(1999)이라는 부탄 영화입니
6. 흑차(黑茶)중국의 ‘육대차류(六大茶類)’에서 ‘흑차(黑茶)’하면, ‘보이차(普洱茶)’ 밖에 없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은 그렇지가 않다. 본고 뒤편에 있는 ‘중국차의 분류와 각종 명차(名茶)’의 분류도표에서 언급되었듯이, 흑차(黑茶)의 종류는 보이
1. 결정의 본성분황 원효는 『대승기신론소』에서 일심(一心)의 영묘성(靈妙性)을 ‘신해지성’(神解之性) 즉 ‘신해성’(神解性)이란 용어로 해명하였다. 그것은 일심의 체는 제8 아리야식과 동일하지만 일심의 뜻은 제9 암마라식과 연속된다는 의미로 푼 것이었다. 그런데 『금강삼매경』에서는 ‘결정성’
백무현/시사만화가
불교는 지혜를 추구하는 종교다. 불교 최후의 목적은 깨달음의 지혜를 획득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지혜가 육바라밀 가운데 가장 나중에 놓여있는 것도 최후 목적인 깨달음의 단계에 언급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범어로는 prajñã, jñãna로서 전자는 혜(慧)로 후자는 지(智)로 번역한다. 세간의 일체 모든
동산의 마음 사상에는 선불교의 정통적인 입장 뿐 아니라 유식사상(唯識思想)에 관한 깊은 통찰 역시 깊숙하게 스며들어있다.‘식(識)’은 세계를 18계로 설명하는 불교적 사유체계이다. 인간의 인식기관(육근; 안․이․비․설․신․의식)이 여기에 대응하는 여섯 가지 인식대상(육경; 색R
평소 우리는 몸과 마음의 무게에 짓눌려 산다. 그것은 우리 삶을 짓누르는 묵직한 무게이기도 하다. 몸을 지녔기 때문에 우리는 육체적 한계로부터 벗어나기 힘들다. 하늘을 날 수 없을뿐더러 물속에서 1분조차 버티기 힘들다. 조그만 열심히 뛰어도 숨 가쁘다. 생로병사의 시간적 추이에서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게 무거운 몸을 지탱하는 것이 힘들고 아프며 대로
이품에서는 부처님께서 열반을 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순타의 공양을 받음으로써, 참된 보시의 공덕과 진실한 불신(佛身)의 진실을 설하였다. 참된 보시공덕이란 보시바라밀을 구족하면 상주(常住)의 오과(五果)를 베풀어 주니, 부처의 영원한 수명, 부처의 위신력, 안락, 변재(辯才)를 얻는다는 것이다. 또한 보시공양을 통하여 여래의 상주(常住)하는 법신(法身)과 무
길을 가는 세 사람 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논어》1.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본래면목(本來面目)은 어떤 모습인가요? 지금의 내 모습은 가짜인가요?괴팍하고 자기만 아는 노처녀 도라(Dora: 페르난다 몬테네그로 분)는 오늘도 중앙역 한구석에 삐그덕거리는 책상을 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한때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지만 지금은 가난하고 글 모르는
경남 밀양 출생의 석성우 스님은 197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산란」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정운 시조 문학상 수상을 수상한 스님은 파계사 주지를 지냈고, 현재 불교텔레비전 회장이며 파계사의 회주로 있다. 율승의 사표로서 차와 시, 불교텔레비전을 통한 대중포교에 큰 원력을 둔 스님은 시집으로 《우리들의 약속》《어둠이 온다고 서러워 말라》《금가락지》《선
최초의 ‘황차(黃茶)’는 민황(悶黃:띠우기)으로 만든 차가 아니라, 차의 발상지 사천성(四川省) 명산현(名山縣) 몽산(蒙山: 혹은 蒙頂山이라고도 한다. )에서 나는 찻잎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찻잎이나 그 싹이 애당초 차나무에서부터 황색 빛을 띠며 발아한 찻잎을 말한다.지금 ‘황차(黃茶)’라 함은 민황(悶黃: 누렇게
맹수와 소년의 동거를 다룬 영화 (미국, 2012)를 보면서 언젠가 읽은 책이 생각났습니다. 책에는 주인공이 키우는 개 세 마리가 이웃집 앞마당을 피바다로 만들어놓은 사건이 묘사됐습니다. 풍산개들이 점령한 이웃집 마당은 개들의 시체가 널브러져있고 피가 낭자했습니다. 그런데 처참한 풍경에 분노하는 것은 인간뿐이었습니다. 정작 당
1. 무생의 마음대승불교 특히 유식-기신-화엄-선법에서 일심(一心)과 본각(本覺)과 여래장(如來藏)은 일미(一味)와 일각(一覺)과 일승(一乘)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이들 개념들은 ‘뜻은 같지만 말이 다른 것[義同言異]’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말에는 의미와 가치가 들어있다고 생각하여 ‘말이 다르면 뜻도 다르다&rsquo
선정(禪定)의 ‘선(禪)’은 범어(梵語) dhyāna의 음역과 ‘정(定)’은 범어 samādhi의 의역이다.풀이하면 정려(靜慮), 사유수(思惟修)로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므로서, 마음이 산란하지 않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 누구나 선정의 힘이 없다면 정신이 흐릿해져 잘못된 판단을 일으키게
정진(精進, virya)은 대승불교의 실천덕목인 육바라밀의 4번째 덕목으로서, 정(精)은 잡(雜)된 것이 없는 것이며, 진(進)은 물러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진은 모든 착한 법으로서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힘과 모든 악한 법을 끊으려는 힘을 갖추고 있다.[勇猛修善法 断惡法之心作用]정진의 정신은 적극적인 것이다. 세간이나 출세간에서나 제불
동산혜일(東山慧日, 1860-1965)선사는 1890년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상방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동규(東奎)였다. 일제 암흑기에 경성총독부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보장된 세속의 명리를 뒤로하고 출가하였다. 1913년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 범어사(梵魚寺)에서 용성스님을 은사로 성월(惺月)스님을 계사로 수계하였다. 법명은 혜일이고, 법호는 동산
기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 한다. 이 자력적이고 자각적인 깨달음은 불교의 큰 장점이기도 하다. 나 자신도 불교의 이러한 점이 상당한 매력으로 느껴져 불교에 입문, 불자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현재 많은 불자들에게 깨달음은 중압감으로 작용한다. 나 자신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 깨달음은 나 자신과는 관계가 없는 남의 일이거나 출가한 스님들
중국의 백차(白茶)는 주로 복건성(福建省)에서 많이 생산된다. 백차의 일반적인 특징을 이야기하자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은 마른 찻잎의 표면이 모두 백색의 부드러운 솜털로 빽빽이 덮여있다는 것이다. 백차는 제다적인 측면에 있어 두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하얀 솜털이 많은 어리고 부드러운 싹과 잎만을 채취하여 만든다는 것이고, 둘째는 제다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