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행복하고 싶어 합니다. 돈을 많이 벌려는 것이나 성형수술을 해서라도 얼굴을 예쁘게 만들려는 것이나, 다른 방향이긴 하지만 마음을 평화롭게 하려는 것이나 모두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을 얻으면 혹시 행복해지지 않을까 해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것이지요.그런데 여기 정말 행복한 소녀가 있습니다. 위에서 열거했던 행복의 수단인 돈
우리나라 불교 영화에서 주로 많이 다루는 주제는 '승려의 길 찾기'입니다. 수행을 꼭 산중에서 해야 하는가, 세속에서 욕망과 부딪치면서 얻어가는 것들이 있지 않는가, 이런 양 극단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수행자들을 그리고 있으며, 또한 다른 방식의 수행을 통해 얻어진 결과를 비교하는 형태로 영화가 구성된다고 봅니다.임권택 감독의 나 &
얼마 전 신문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이 쓴 칼럼 한 편을 읽었다. 그는 칼럼에서 햇빛과 바람에서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고 특별한 고백을 했다. 아침마다 차를 탈 때 시동을 걸어놓고 엔진이 충분히 돌 때를 기다리는 동안 창문을 열어놓으면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고, 부드러운 바람이 들어오는데 그들을 느끼는 동안 불편하던 마음이 잠시 가라앉는 경험을 한다고 말했다.좀
단순하면서도 순수한 감성을 갖고 있는 영화가 보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의 순수한 믿음을 다뤘던 과 같은 영화에 목말랐었습니다. 이번에 만난 영화는 이런 목마름을 채워주기에 적당했습니다. 아이들이 등장하고 순수한 정서가 지배적이고, 거기다 불교적 가르침이 있고, 완벽한 불교 영화였습니다.(1999)이라는 부탄 영화입니
맹수와 소년의 동거를 다룬 영화 (미국, 2012)를 보면서 언젠가 읽은 책이 생각났습니다. 책에는 주인공이 키우는 개 세 마리가 이웃집 앞마당을 피바다로 만들어놓은 사건이 묘사됐습니다. 풍산개들이 점령한 이웃집 마당은 개들의 시체가 널브러져있고 피가 낭자했습니다. 그런데 처참한 풍경에 분노하는 것은 인간뿐이었습니다. 정작 당
(한국, 1989) 은 삶과 죽음의 의미를 불교적인 관점에서 심도 있게 탐구하는 영화입니다. 마치 과학자가 현미경 렌즈를 통해 대상을 관찰하듯 감독은 불교라는 렌즈를 통해 삶과 죽음이라는 현상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 성과 있는 결과물을 내놓습니다. 또한 감독의 렌즈는 선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 영화는 엄밀하게 말하면
아마도 불교에서 가장 유명한 불보살님은 관세음보살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 보살님은 불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보살이지요. 어려움에 처한 중생이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그 소리를 듣고 보살님은 자비심을 일으켜 중생을 구제한다고 합니다.그렇다면 관세음보살님은 어떤 모습으로 중생을 구제할까요? 절에 걸린 탱화, 아니면 불상에서 보이는 그 원
영화 의 가장 큰 장점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는 않지만 세계 불교에서 뚜렷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라마불교를 소개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과 같은 영화에서 달라이라마 이야기를 통해서 라마불교를 조금 경험하긴 했지만 이전에 우리가 경험했던 라마불교가 서양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라마불교라면 는 새로운 시각의 라
김기덕 감독의 이라는 영화를 본지 '영화에서 불교보기' 라는 코너에서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소재가 불교적이라는 이유에서였지요. 사찰이 배경이고, 스님이 등장하고, 반야심경을 새기는 장면이 주요 장면으로 나오는, 누구라도 불교영화라고 생각하게 되는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 속으로 들어가니 선입관과 달랐습
이 영화 (미국, 1993)에는 서양에서 뿌리 내린 불교의 모습이 엿보입니다. 서양에서의 불교는 티베트 불교에 가깝습니다. 티베트불교의 중심사상인 ‘환생’이 서양 불교인들 사이에서는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서양 불교는 이 환생 개념을 바탕으로 형성된 불교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
가장 불행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여러 경우가 있겠지만 살인자 자식을 둔 부모도 그 중에 포함될 것입니다. 그것도 대량살인을 저지른 사이코패스 자식을 둔 엄마는 더 이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나쁜 경우입니다. 사지가 찢기는 고통에 버금가는 고통스런 삶이 그녀의 몫인 것입니다. 내세를 기다릴 것도 없이 현재가 바로 지옥입니다. 만약 신이 있어 인간을 이러한
인도의 성자 라마나 마하리쉬는 종교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했습니다. 신에게 헌신하는 길과 자아를 탐구하는 길입니다. 신에게 헌신하는 대표적인 종교는 크리스트교고, 자아를 탐구하는 대표적인 종교는 불교입니다. 신에게 헌신한다는 것은, 인간의 역할을 오직 신을 숭배하는 존재로만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자아를 탐구한다는 것은, 인간 자신이 바로 신처럼 완
수행자들은 대부분 ‘아상(我相)’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상구보리(上求菩提), 즉 지혜의 개발에 집중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경향은 일반인의 눈에는 탐탁찮게 보이는 구석이 있습니다. 산중에서 혼자서 깨닫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라는 의구심을 일으키는 것이지요. 즉 참여적인 불교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대가 반
사춘기 딸과 내 관계는, 변심한 애인과 그 애인에게 집착하는 연인의 관계와 다르지가 않습니다. 물론 딸은 변심한 역할이고, 엄마인 난 버려진 쪽입니다.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좋은 사람으로 여겼던 마음에 성난 파도가 지나갔는지 딸은 갑자기 변심한 애인처럼 냉정해졌습니다. 살갑게 굴던 착한 딸은 멀리 떠나고 쌀쌀맞고 삐딱한 딸이 어디서 툭 떨어졌습니다
황금종려상 받은 태국영화 우리가 속한 세계가 모두 환상이라고 하자 많은 사람들은 총알처럼 대답했습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본인은 분명 눈으로 보고 온 몸으로 경험하는 세계를 갖고 환상이라고 하니까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잘라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불교에서는 왜 세계를 환상이라고 할까요? 에서는
설악산 오세암에 관한 실화 대전에 살 때 우리가 사는 아파트 앞에는 절이 있었습니다. 절은 아파트와 마당을 함께 사용한다 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다. 또한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사찰에서 만들어놓은 불상이 있어서 집으로 오가는 길엔 언제나 그 불상을 지나쳐야 했습니다. 우리 집 작은 애는 불상 앞을 지나갈 때는 언
삶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면 나는 KBS 다큐멘터리 을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아마도 이 프로를 보게 되면 삶이 불행으로부터의 도전이라는 진리 정도는 배우게 될 것입니다. 에 나오는, 갓난아기를 둔 엄마는 어느 날 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습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거지요. 그래도 아침에 깨어날 때마다 감사기
이란 최대 관광도시인 이스파한에는 자얀데 강이 도시를 관통하며 흐릅니다. 수량이 많지 않은 강이지만 이 강 위에는 무려 11개의 다리가 놓여 있습니다. 다리들도 그냥 다리가 아니라 예술 작품이라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다리입니다. 차가 지나다니는 그런 다리가 아닌 것이지요. 이 다리들은 만남과 사색의 공간이었습니다. 이스파한 시민들은 노을이 내리는 시간이면
서양 사람들이 만드는 불교영화는 대부분 달라이 라마에 관한 영화입니다. 현대 미국영화의 거장 마틴 스콜세지 또한 달라이 라마로부터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만든 (미국, 1997) 이라는 영화에는, 지금의 14대 달라이 라마가 선대 달라이 라마의 환생자임을 입증 받는 2세에서 시작해 조국 티베트를 떠나 인도로 망명길에 오르는
어느 스님의 법문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예전에 한 마을에 노파가 살고 있었습니다. 노파는 어느 날 시주를 온 스님에게서 ‘나무아미타불’을 열심히 외우면 극락에 간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스님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노파는 밤이고 낮이고 ‘나무아미타불’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노파는 자신이 열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