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9. 부처님이 사위국1) 기원정사〔舍衛國精舍〕에 계실 때이다. 네 명의 새로 출가한 비구〔新學比丘〕가 있어 망고나무〔㮈樹〕2) 아래에 이르러 좌선하며 도를 닦을 때 망고나무 꽃이 활짝 피어 빛깔이 좋고 또한 향기로웠다. 그리하여 서로 말하였다. “세상 만물 중에 무엇이 사랑할 만하여 사람 마음을 즐겁게 할까?” 한 사람이 말하였다. “봄이 한창일 때 모든 나무에서 꽃이 활짝 피었을 때 들판에서 노닌다면 이것이 가장 (사람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이지.” 또 한 사람이 말하였다. “종친(宗親)끼리 기분 좋게 만나〔吉會〕 술잔을 주
태조 이성계와 무학 대사는 조선이 건국되기 전부터 긴밀한 사이였다. 1392년 7월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그해 10월 9일 수행과 지혜가 높았던 무학을 왕사로 삼았다. 3년 9월에는 천태종에 소속된 조구(祖丘)를 국사로 삼은 것으로 볼 때 태조 주위에 많은 고승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조는 자신의 정치적 횡보에 필요한 자문은 물론 인간적 교류를 통해 무학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무학에게 많이 의존했다는 것은 그만큼 둘의 사이가 각별했음을 시사한다. 무학은 왕사로서 국가적인 불교 행사에서 강설(講說)하고,
“일곱 무지갯빛을 선보이다”근세기에 ‘조선의 모스크바’로 불린 대구와 같이 평양은 한때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렸다. “평양은 조선의 예루살렘이라 불린다.”고 1921년 2월 조선총독부의 평안남도지사 시노다 지사쿠가 총독에게 공식 보고한 후, 서울 사랑의교회가 2005년 5월 개최한 ‘성서학 학술심포지엄’에서 평양을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지칭한 것이 확대돼 불리고 있다. 이처럼 역사적 아이러니 속의 옛 별칭으로까지 재해석된 지명들은 2011년 9월, 남측 7대 종단 대표자들의 평양행에서도 이야깃거리로 오갔다.그때 평양의 절들을
한편 지방 각 선원 역시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김적음金寂音 씨가 계속繼續하여 지방 선원수와 상황을 보고하다지방선원수地方禪院數 45개소수좌명수首座名數 200여 명52)적음 스님이 선종수좌대회에서 보고한 선원과 수좌 규모이다. 선우공제회가 창립될 당시 지방 지부는 직지사, 백양사, 범어사 등 19개 사찰에 설치하였다. 그러나 선학원이 이후 7~8년 동안 침체의 시기를 견디고 재건된 것이 1931년의 일이다. 중흥조 적음 스님을 비롯한 선학원의 대중들은 창설 당시의 선풍진작과 선의 대중화를 위해 쇠락한 중앙선원을 쇄신하여 안거 수행을 지
탐욕이 끼치는 손해와 탐욕의 절제로 얻게 되는 이익〔貪欲과 節欲의 得失〕825. 부처님이 말씀하시었다. “너희들 비구들아! 마땅히 알지어라. 욕심이 많은〔多欲〕 사람은 이익을 많이 구하는 까닭에 괴로움 또한 많고, 욕심이 적은〔少欲〕 사람은 구하는 것도 없고 욕심내지도 않는 까닭에 이러한 우환이 없다. 그러므로 고를 멀리하고자 하면 소욕(少欲)을 닦아 익혀야 한다. 하물며 소욕(少欲)은 여러 공덕을 생겨나게 할 수 있다. 욕심이 적은〔少欲〕 사람은 아첨하며 남의 마음을 사고자 하지 않고 또한 여러 욕망〔諸根〕에 끌려 다니지 않는다.
1392년 7월 17일 수창궁에서 왕위에 오른 태조는 왕자의 난 이후 선위(禪位)할 때까지 7년 동안 권좌에 있었다. 이 기간에 다음과 같은 불교 배척의 상소가 올라왔다.사헌부의 불교 배척 상소태조 1년 7월 20일 사헌부에서 기강 확립, 승려의 도태 등 10개 조목에 관한 상소문을 올렸다. 승니를 도태(淘汰)시키는 일은 아홉째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불법이란 것은 오랑캐의 한 가지 법입니다. 한나라 영평(永平) 때 처음 중국에 들어왔는데, 동방으로 전해 와서는 숭봉 함이 더욱 심해져서 연방(蓮坊; 사찰)과 감우(紺宇; 사찰)가
“대장경 천년의 해를 열다”2011년 음력 2월 보름은 아주 특별했던 날이다. 음력 2월 보름은 우리나라에서 대장경을 처음 판각하기 시작한 날이다. 1011년 2월 보름 충북 청주행궁에서 연등회 특별행사로 고려의 8대 현종 왕이 신하와 함께 대장경 판각을 발원한 날이다. 즉, 《초조대장경》의 탄생일이다. 그로부터 11년 후, 고려 왕조는 1차 장경 판각 완성을 기념하기 위해 1022년 10월 개경 현화사에서 문하시랑평장사 강감찬이 판각 기문(제문)을 지어 올리는 등 대장경 판각 경축법회를 처음 열었다.‘전쟁을 진압하는 대장경’이란
3. 재단법인의 탄생1) 재단법인의 발기 및 허가불기(佛紀) 2960년(소화 8) 3월 21일에 선우공제회(禪友共濟會)를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으로 개칭(改稱)하고 재단법인으로 하기 위하야 임시발기회를 조직하였다.불기(佛紀) 2961년(소화 9) 12월 5일에 조선총독부로부터 재단법인 설립이 허가된 바 신입재산총액(申込財産總額)은 약 9만여 원이며 실선량(實禪粮)은 정조(正租) 600여 석.정조(正租) 170석 정혜사 선원定慧寺禪院)정조(正租) 30석 직지사 선원直指寺禪院)정조(正租) 200석 범어사 선원梵魚寺
817. 귀와 눈을 잘 지키지〔防護〕 않으면 탐욕이 이로부터 생기니 이를 일러 괴로움의 씨앗〔苦種〕이라 하느니라. - 《잡아함경(雜阿含經)》818. 탐욕은 숯과 같으니 애욕〔欲愛〕을 증장(增長)하면 크게 번뇌〔大熱惱〕하는 까닭이니라. -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819. 어리석은 사람〔愚騃之子〕은 하품(下品)의 사람〔下士〕으로 재물 모으기에 열중하여〔治行求財〕, 때론 바른 방법으로 때론 나쁜 방법으로〔或正或邪〕 재물〔財寶〕을 축적하지만 하루아침에 목숨이 다하면 재물은 그 몸을 따라가지 못하느리라. - 《생경(生經)》820. 탐욕은
진흥왕 대 국선(國仙)으로의 미륵제24대 진흥왕(眞興王)은 민가의 낭자 가운데 아름답고 예쁜 사람으로 3, 4백 명을 뽑았다. 그들 가운데 남모랑(南毛娘)과 교정랑(峧貞娘)을 뽑아 원화(原花)로 삼고 효도와 우애, 그리고 충성과 신의를 가르쳐 나라의 인재로 삼고자 하였다. 그러나 남모를 질투한 교정은 술자리를 마련하여 취하게 한 뒤 북천(北川)으로 메고 가서 돌로 묻어서 죽였다.그 무리들은 남모가 간 곳을 알지 못해서 슬프게 울다가 헤어졌다. 그러나 그 음모를 아는 사람이 있어서 노래를 지어 동네 아이들을 꾀어 거리에서 부르게 하였
“다시 만남으로 대화하다”1990년대 중반부터 ‘고난의 행군’이라 불린 북측의 심각한 식량 위기는 2010년에 다시 대두됐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추정한 2009년 북측의 자체 식량 생산량은 최소 소요량 522만 톤에 비해 120만 톤가량이 부족하다고 발표했다. 2010년 5월 21일 조선로동당 차원에서 “정부 차원의 식량 배급이 불가하니 자력갱생할 것”을 선언하는 등 식량 사정은 국제사회가 얼마만큼 지원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전망됐다.이런 상황을 걱정하던 남측 종교인들은 장고 끝에 입장을 취했다. 개신교, 불교, 원불교, 가
백용성(白龍城)은 1912년 5월 26일 범어사가 주축이 되어 진행된 조선임제종 중앙포교당(朝鮮臨濟宗 中央布敎堂) 개교식을 주도하였다. 이 개교식은 1300여 명이 참석할 정도로 성황리에 종료되었다.32) 백용성은 임제종의 조선선종 중앙포교당의 포교사로 활동하였다. 그는 1919년 3·1운동 당시 한용운과 함께 불교계를 대표하여 민족 대표로 가담하기도 하였는데, 일제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그는 1921년 오성월, 송만공, 김남전 등과 함께 선학원 창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33) 1931년 선학원 재건 당시에는 송
811. 탐욕스런 사람은 많이 쌓아두고도 만족할 줄 모르므로, 번뇌로 뒤바뀐 마음〔無明顛倒心〕으로 항상 남의 것을 빼앗을 것을 생각하니, 현재에 원한과 증오가 많고, 몸을 버린〔捨身〕 뒤에는 악도(惡道)1)에 떨어지나니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스스로 만족함〔知足〕을 생각할지니라. - 《니건자경(尼乾子經)》2)812. 제멋대로 모든 욕망에 집착하면 모든 욕망을 즐기는 까닭에 영구히 열반을 얻지 못하나니라. - 《보성다라니경(寶星陀羅尼經)》813. 피〔稊稗〕3)는 벼를 해롭게 하고, 많은 욕망은 배움을 방해하느니라. - 《법구
백제 사원건축 기술자의 도움삼국시대 불교건축 기술은 백제가 가장 뛰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기술력은 신라의 불교건축 건립에도 도움이 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신라 황룡사 구층탑 건립이 백제 기술자에 의해 세워진 것을 들 수 있다.황룡사 구층탑이 건립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신라 제27대 선덕여왕 즉위 5년(636) 당나라에 유학한 자장 법사가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만났다. 이때 문수보살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너희 국왕은 천축의 찰리종(刹利種) 왕으로 미리 불기(佛記)를 받았기 때문에 특별히 인연이 있다. 따라서 동이(東夷
“같은 꿈, 다른 꿈을 꾸다”2008년 7월 12일부터 금강산관광이 중단되면서 남북관계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이명박 정권은 노무현 정부에 대해 ‘대북 퍼주기론’으로 비난하며, 2010년의 남북교류에서도 심술을 부렸다.그러나 한 사람은 예외였다. 이명박 정권의 통일부는 2009년 11월 5일 제33대 조계종 총무원장에 취임한 자승 총무원장의 평양 방문에 대해 전격적으로 허가했다. 2010년 1월 30일부터 2월 2일까지 평양 방문은 북측 민족화해협의회(약칭 민화협) 초청으로 이뤄졌다.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의 평양행은 2005
2.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과 조선불교선종 선포1934년 12월 5일 선학원은 설립 이후부터 숙원이었던 재단법인 인가를 받았다. 우선 선우공제회를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으로 개칭(改稱)하고 동시에 1935년 선종수좌대회를 통해 종명(宗名)을 ‘조선불교선종(朝鮮佛敎禪宗)’이라고 칭하고 종단 설립을 추진하였다.우선 주목할 점은 종명이었다. 1929년 당시 불교계의 대표가 참여한 가운데 개최된 불교계의 통일운동은 조선불교선교양종승려대회(朝鮮佛敎禪敎兩宗僧侶大會)였다. 사찰령 체제하에서 30본사 주지들의 회합체인 30
801. 탐욕을 끊지 못하면 불에 마른 장작을 더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마땅히 (탐욕을) 멀리해야 한다. 목마른 이가 짠물을 마시면 그 목마른 마음이 더 커지듯, 탐욕스러운 이〔著欲者〕가 욕망에 끝이 없음〔無厭〕도 이와 같다. 여러 물줄기가 바다에 들어가지만 만족할 때가 없듯이, 탐욕스러운 이가 욕망에 끝이 없음도 이와 같다. 여러 탐욕에 집착하면 탐욕의 불이 더욱 치성(熾盛)하니 마땅히 맑은 지혜의 물〔淨智水〕로 없애 어떤 (탐욕의) 찌꺼기도 남지 않게 할지니라. - 《부자합집경(父子合集經)》802. 탐욕은 독의 싹과 같아 닿
경흥을 깨우쳐 준 문수보살신문왕 대의 대덕 경흥(憬興)은 성이 수 씨(水氏)이고 웅천주(熊川州) 사람이다. 나이 18세에 출가하여 경, 율, 논 삼장에 통달하여 명망이 높았다. 681년 문무왕이 승하하면서 신문왕에게 유언으로 “경흥 법사는 국사가 될 만하니 짐의 명을 잊지 말아라.” 할 정도로 도력이 높았다. 그 말을 들은 신문왕은 즉위하자 경흥을 국사로 책봉하고 삼랑사(三郎寺)에 주석하게 하였다.국사로 있던 경흥이 갑자기 병이 나서 한 달 넘게 고생하였다. 한 비구니가 와서 그를 문안하고 《화엄경》 가운데 착한 친구가 병을 고친
“남북이 함께 촛불 켜다”조선중앙통신사가 발간한 1950년판 《조선중앙연감》에는 “1945년 12월 26일 북조선불교도련맹이 창립했다.”고 기록했으나, 출범식 장소에 관해 명기하지 않았다.그 연맹의 〈강령〉은 “첫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과 정부 정강을 받들고, 이것을 철저히 실천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하며, 조국의 국토 완정과 완전 자주독립을 위하여 적극 노력한다. 둘째, 조국의 통일독립과 민주 발전을 조해하는 일체 외래 제국주의 침략 세력과 그 앞잡이인 친일파 민족 반역자 및 교단 반역자들과 과감히 싸우며, 일본제국주의 사상
1) 선우공제회(禪友共濟會) 창립불기 2949년(1922) 3월에 쇠멸되는 선원을 부흥시키기 위해 송만공(宋滿空), 김남전(金南泉), 백용성(白龍城), 오성월(吳惺月), 강도봉(康道峰), 한용운(韓龍雲) 등 여러 스님의 발기로 선우공제회를 창립하였다. 불기 2950년(1923)에 공제회를 사단법인(社團法人)으로 운동하다가 이루지 못하고 이후 4~5년간은 미약하고 부진한 상태로 근근이 가람(伽藍)만 보전하고 유지하였다.2) 수좌대회의 좌절불기 2955년(1928) 12월 23일에 적음 스님이 선학원을 인계받아 선계 중흥(禪界中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