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선의 풍수지리사상에 관한 문제 역시 그의 선법과 마찬가지로 직접적이고 문헌적인 증거가 전무하다. 역시 당대의 시대사조와 더불어 유추해석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도선을 전후한 나말여초의 선승들이 풍수지리설을 겸수하는 것은 당시의 일반적 풍조였다. 왜냐하면 선사들이 산문을 개창할 때 풍수지리설에 따라 사원의 자리를 결정한 예가 여러 곳에서 나타
두 번째로 선사로서의 도선의 전기와 사상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자.1) 도선의 속성은 김씨(金氏)이며 흥덕왕 2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났다.2) 그의 선대와 부조는 역사에서 기록이 빠졌다. 혹은 그가 태종대왕의 서손(庶孫)이라 한다. 어머니는 강씨(姜氏)로 꿈에 어떤 사람이 광채 나는 구슬 1개를 주면서 삼키라 했는데, 그 후 태기가 있었다. 만삭이 되도록 매
신라말 구산선문(九山禪門) 중의 하나인 동리산문(桐裏山門) 계열의 대표적인 선사(禪師)이며 우리나라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의 원조로 받들어지는 선각국사 도선(先覺國師 道詵, 827~898)은 동리산문의 개창조 적인 혜철(寂忍 慧徹, 785∼861)의 인가를 받고 전라남도 광양의 옥룡사(玉龍寺)에서 독자적인 선풍을 일으킨 인물로 회자(膾炙)된다.1)
신라 통일기인 7~8세기, 신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불교 담론의 주요 주제는 ‘인식〔識〕’과 ‘마음〔心〕’이었다. 또한 이 시기의 동아시아 불교학은 당대의 대표적인 사상가였던 신라인 원효(元曉, 617~686)와 중국인 법장(法藏, 643~712)의 이해를 거친, 인도인 아슈바고샤(Aśvaghoṣ
의상은 원효의 동시대인이지만 원효가 수많은 논소를 저술하여 그의 예지를 빛낸 반면, 의상은 오히려 말을 적게 하고 뜻을 함축함으로써 원효와 대조를 이룬다. 의상의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는 화엄의 핵심인 일승법계연기(一乘法界緣起)를 총 210자(字) 7언(言) 30구(句)로 압축시킨 후 하나의 도형(圖形)으로 형상화(形象化)한 것인데, 상하좌우로
화엄사상은 유식사상과 함께 통일신라의 불교학을 대표하는 사상이다. 화엄은 모든 존재의 상호연관성[法界緣起]과 더불어 부처와 중생의 동일성[本來成佛]을 주장하는데, 당(唐)나라 때 지엄(智儼, 602~668)이 이론적 기초를 다지고, 법장(法藏, 643~712)에 이르러 완성된다고 회자(膾炙)된다. 그러나 해동(신라) 화엄은 지엄 문하의 의상(義湘, 625&
《화엄경(華嚴經, Mahāvaipulya Buddhāvataṃsaka Sūtra)》 또는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은 초기 대승불교의 중요한 경전이다. 《화엄경》은 고타마 붓다가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직후에 그 깨달음의 경지(境地)를 그대로 설파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또한 그렇게 믿어져 왔다. 물론 이는 역사적
앞에서도 보았듯이 원효는 학승(學僧)으로서 높이 평가되지만, 당시 왕실 중심의 귀족화된 불교를 민중불교로 바꾸는데 ‘민중교화승’으로서도 크게 공헌하였다. 또, 종파주의적인 방향으로 달리던 불교이론을 고차원적인 입장에서 회통(會通)시키려 하였는데 그것을 우리는 오늘날 특화(特化)시켜 ‘원효의 화쟁사상(和諍思想)’이라
원효는 한국이 낳은 가장 탁월한 불교사상가 중의 한 사람이다. 지정학적으로 신라는 한반도의 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불교의 도입이 고구려(372년)나 백제(384년)보다도 150년 이상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원효가 태어날 무렵은 신라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래(527년)된지 겨우 90년이 지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신라불교
신라에는 불교가 5세기 초, 19대 눌지왕(417∼457) 때를 전후한 시기 고구려를 통하여 무명(無名)의 전도자들에 의해서 전해진 듯하다. 신라에 처음 불교를 전해 준 것은 고구려에서 온 승려들인 것 같은데, 경북 선산지역[신라 고구려의 국경지대]을 거점으로 하여 불교를 전파했다. 그러나 제대로 전교된 것 같지는 않고, 6세기 초 법흥왕(法興王)
원측의 9식관과 관련해서 주목할 것이 있다. 그것은 원성실상(圓成實相)에 대한 견해이다. ‘유식삼성설(唯識三性說)’이라 회자(膾炙)되는 것이 그것이다. 유식불교는 모든 존재에 대하여 3가지 조망을 한다. <삼성설(三性說)> ①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 미망의 자기, 두루 분별된 자성 → 의타적인 존재가 잘못 인식되
유식사상은 소승불교의 부족한 교리를 보충하고 용수(龍樹)의 공(空)사상이 지나치게 공허한 사상으로 치우쳐 가는 것을 바로잡고자 나타난 사상이다. 대승불교의 근본은 ‘무자성공(無自性空)’이다. 중관학파의 용수도 중론에서 여덟 가지의 부정(八不)을 통해 공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후대의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일체법이 무자성공이라는 것을 잘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적인 학자이자 위대한 유식학자(唯識學者)이며, 서명학파(西明學派)의 태두(泰斗)인 문아 원측(文雅 圓測: 613~696)은 신라 진평왕 때의 왕손으로서 경주 모량부(牟梁部) 출신이다. 휘(諱)는 문아(文雅)이고 자(字)는 원측이며, 3세에 출가하여 경론(經論)을 학습한 뒤에 15세(진평왕 49, 627)에 구법입당(求法入唐)하였다. 장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