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에 대한 정의는 ‘지나치게’ 간단명료하다. 그러나 선객들의 말처럼 “해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게 또한 선(禪)”이다. 그래서 선객이 화두를 타파했는지 아닌지, 깨달음을 얻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기준은 사실상 객관적으로 없다. 어떤 시험을 치르는 것도 아니고, 몇 년 동안 어떤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형식이나 과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2004년 11월 18일 범어사(梵魚寺) 보제루. 석주당(昔珠堂) 정일(正一) 대종사의 영결식이 거행되었다. 1923년 출가 이후 81년 동안의 수행자로서의 삶을 마친 것이다. 선학원 이사장, 조계종 총무원장, 동국역경진흥원 이사장, 조계종 개혁회의 의장 등 번다한 상(相) 역시 한줌 재와 연기로 사라졌다. 젊은 시절 선학원에서 스님과 함께 수행했던 관응
어떤 인생을 살 것입니까. 다 함께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생문제란 따라서 어떻게 하는 것이 착한 일을 해서 선도로 가는 것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나쁜 행동을 멈추어서 악도에 나는 것을 피하는 것인가에 모아진다 할 수 있습니다.우리네 모양새가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만큼, 우리가 가는 길 역시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
9월은 가을의 마지막 달이다. 그래 모추(暮秋)고 만추(晩秋)다. 국화 만개하니 국월(菊月)이다. 24절기로는 한로(寒露)와 상강(霜降)이 든다. 명절로는 구월구일(귀일) 중구(重九)가 있다. 9월이 되면 농촌에서는 남자들은 그해 논농사를 결산하는 추수를 하고, 여자들은 마늘을 심거나 고구마를 수확한다. 퇴비만들기, 논물빼기, 논 피사리 등은 남녀 공동작업
싱그러운 햇과일과 곡식을 조상님께 올리는 추석. 풍요로운 한가위 차례상을 차리는데 식구들끼리 ‘맞다 틀리다’ 싸우다 얼굴만 붉히고 오는 경우도 더러 있다. 올 추석부터는 ‘그런 과정’ 모두 생략하고 불교 차례의식으로 조상님을 모셔보는 건 어떨까. 『통일법요집』을 중심으로 ‘부처님과 조상에게 햇과일을 공양하고 조상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불교식 차례상 차림과
현장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에 따르면 인도 지방에서 부처님의 입태는 웃타라 아샤다 달의 그믐날이라 한다. 탄생은 바이샤카 달 후반의 보름으로, 중국의 삼월 보름에 해당되는 날이다. 즉 중국력의 삼월 여드레날에 해당된다고 현장 스님은 기록하고 있다.한국은 4월 초파일을 ‘부처님 오신날’로 기념하고 있으나,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는 부처님의 탄생, 성도(成
꽃만큼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게 또 있을까. 마야부인이 룸비니 동산에서 싯다르타를 낳았을 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산회상에서 법을 전할 때에도 말 대신 한 송이 꽃을 높이 들어올렸다. 이것이 그 유명한 ‘염화미소’다. 이뿐만 아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전생에 선혜보살로 수행할 때, 일곱 송이의 꽃을 갖고 있던 구리선녀를 만나
‘대선 주자’들이 ‘불심 잡기’에 한창이다. 이미 이들의 ‘대선 캠프’에 참여하는 불자들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 ‘대선’이라는 거센 바람이 불교계에도 불어 닥친 셈이다. 이런 광풍 앞에 우리의 모습[불제자]을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은 바로 경전이지 않을까. 경전에는 ‘불교와 정치의 바람직한 관계’며, 나아가 ‘정치에 대한 불교의 지도적 위???담겨 있기 때문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불교계에도 거센 정치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불교계를 향한 대권후보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고 있으며, 불교계에서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단체가 발족하기도 했다. 또 불교인들의 대선캠프 참여도 속속 이어지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대선을 겨냥한 불교계 정책 마련에도 한창 분주한 상황이다.2005년 통계청 조사
올 12월 대선을 앞두고 불교계에 정치바람이 불고 있다. 특정 후보나 정당에 줄을 서고, ‘포럼’이나 ‘연대’라는 이름의 후원조직도 결성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들에 대해 교계 안팎의 시각은 그리 곱지 않다.“특정인에 대한 지지는 불교를 세속화시키고 불교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출가자는 인천(人天)의 스승이라고 했듯 가르치는 사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입니다. 깨달음이야말로 불교를 불교이게 하며, 불교와 여타 종교의 차별되는 척도가 됩니다.물론 불교가 믿음의 요소를 배제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불·법·승과 수행의 과보에 대한 믿음은 초기불교에서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거의 절대적으로 요구되고 있습니다. 즉, 불교에서의 믿음은, 인간은 누구나 절대적 진리(眞如)를 깨달을 수 있다는 절대적
불사리는 대승경전의 발달과 함께 부처님의 몸과 같이 여겨져 단순한 유골이 아닌 믿음의 대상이 됐다. 부처님의 사리에 공양하고 그 공덕을 찬탄하는 법회를 사리회 혹은 사리강(舍利講)이라고 하는데 오늘날에도 활발하다.석가모니 부처님이 기원전 480년경 인도 쿠사나가라의 성 밖에서 열반에 든 뒤 7일 만에 재가불자들이 맡아 다비하자 8곡(斛) 4두(斗)나 되는
부처님 열반 이후 여러 불보살과 함께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던 불사리.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의 불사리 기획특별전(5월 3일~21일)을 전후해 사리에 대한 불교계와 국립중앙박물관 불교계(조계종 등)의 견해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 주목된다. 불교계는 ‘신앙의 대상으로 사찰에 봉안해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문화유산으로 누구라도 쉽게 볼 수 있어야 한다’
“깨어있는 그 자체가 행복이어라” 지난 5월 20일 오후 6시, 40여명의 불자들이 봉화 축서사에 모여들었다. 이 자리에 모인 대중들은 조계종 포교원이 간화선 대중화를 목표로 서울 봉은사 시민선방에서 처음 실시한 ‘간화선 초심자들을 위한 수행프로그램(이하 간화선 프로그램)’ 참가자들이다. 이날은 3월 14일부터 시작된 간화선프로그램의 마지막 10주차 교육시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수행은 출가자의 영역이고 재가자는 기도를 중심으로 신행생활을 하면 된다는 게 일반적인이었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 새 이러한 편견이 서서히 무너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수행의 현장에 뛰어들고 있다. 비록 빠르고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출·재가를 막론하고 불교의 궁극적인 완전한 행복과 자유를 지향해야 한다는 점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일반인들이 수행 관련 프로그램을 지도할 수 있는 재가자 선(禪)지도사 제도가 마련된다. 조계종 포교원과 동국대 선학과가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선지도사 양성’은 포교원에서 선지도사 양성을 위한 관계 법령을 마련하고, 동국대 선학에서 선지도사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과 교육을 총괄하는 방식이다.종호 스님(동국대 선학과 학과장)은 “지난 3월 충주 석종사에서 열
“부처님 제자로 한평생, 감사한 마음” 하안거(夏安居) 결제가 시작되었다. 교계언론에는 간혹 수행하는 스님들의 안행(雁行)하는 모습을 통해 치열한 수행의 흔적을 담아내고 있다. 이번 한 철에는 어느 장부가 부처의 골수를 훔쳐낼 수 있을까.스님들의 일상사이자 장부일대사이기도 한 수행을 거론할 때면 무불(無佛, 1907~1984·사진) 스님이 떠오른다. 법명이
자각과 실천으로 마음을 맑게 사람들은 스님의 상에 일정한 유형이 둔다. 대부분 도심과는 떨어진 곳에서 근엄한 목소리로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는 모습을 그린다. 그러나 보광 스님(보각선원장·인천·사진)은 그런 유형과는 거리가 멀다. 우선 주석하는 곳이 학교·교회와 어깨를 맞댄 도심이고, 온화한 미소와 푸근한 어투는 만나는 불자들에게 근엄함보다는 친근감을 준다.
영험한 기도도량으로 가는 길은 항상 힘들다. 대부분의 도량이 가파르게 굽이치는 산길을 좌고로 삼아 앉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간절한 서원을 품은 불자라도 이마, 콧등,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땀방울과 가슴을 턱턱 조이는 숨결을 막지 못한다. 그래서 서원은 더욱 절실해지고, 신심은 더욱 깊어진다.가파르게 굽이치는 산길을 굽어보며, 해발 800여 미터의 천주봉을
금강석 같은 심신 키우고 닦는다 법수선원 대적광전. 아침부터 60대 전후로 보이는 거사(居士) 한 분이 구슬땀을 흘리며 절을 하고 있다. 땀으로 젖은 옷, 소금기 묻은 맑은 얼굴. 그는 법수선원 신도회장 김상규 교수(경원대 외래교수ㆍ65·사진). 500배 정진을 끝내고 염주, 목탁, 수건, 물통 등이 담긴 가방을 들고 일어서는 김 회장을 만났다.“마음 맑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