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는 ‘전도 선언문’에서 “만인의 행복과 이익을 위하여 전도의 길을 떠나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처음에 부처님께서는 ‘당신이 깨달은 진리를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셨지만, ‘정법을 널리 전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신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정법을 알려,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유지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전도
지난해 문화관광해설사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박해소(42, 사진 ) 씨와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일주일 전에 요청한 운주사 해설이었건만 저녁 해질 무렵에야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오전에 맡았던 팀과 화순군 일대를 다니며 안내하다보니 일정이 지연되면서 일어난 작은 사건(?)이었다.“바쁘게 움직였는데도 시간이 걸리네요. 운주사에 와서 보니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많
관람료 문제로 불교가 홍역을 앓고 있습니다. 사실 관람료를 받는 사찰은 전국적으로 70곳이 채 못 됩니다. 조계종의 2,300여개 소속 사찰을 놓고 보았을 때 2,200여 곳 이상은 관람료와는 아무 상관없이 도매금으로 국민의 비난을 받는 것이지요. 비록 70여 곳이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전통사찰 가운데서도 알짜배기라고 해도 나머지 사찰들이 억울한 것은 틀림없
불자들은 사찰의 유·무형 가치를 잘 알고 있다. 그곳이 무엇을 하는 곳이며 또 무엇을 담고 있는지 말이다. 반면 일반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대부분 피상적이고 자의적인 앎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종교’라는 테두리 탓만은 아니다. 그 곳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용기’, 알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불교계 안팎에서 ‘불교문화해설사’나 ‘사찰생태지킴
‘사찰은 산속에 있다’는 진부하지만 일반화된 인식은 역사 속에서 불교가 겪어온 우여곡절의 편린이다. 신라 말 도참설(圖讖說)이 대두된 이래, 풍수·지리적 근거 틀 속에서 사찰은 심산구곡으로 파고 들어갔다. 고려시대의 사찰도 이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풍수·지리적 근거를 존중하였고, 고려를 이은 조선시대에 와서는 역대로 탄압을 겪으며 더욱 깊은 산중에 은익 함으
사찰, 그곳은 현대인들에게 쉼터이자 명승 관광지로 여겨지기 쉽다. 불자들 역시 기도와 수행의 귀의처이자 순례처로 인식하기 십상이다. 전통적 사찰은 관광객이나 재가불자 그들을 위한 공간이 아닌 그곳에서 먹고 자고, 기도·수행하는 스님들의 일상처이다. 보통 사찰을 뜻하는 가람(伽藍)은 ‘여러 승려가 모여 수행하며 살아가는 곳’이었다.가람의 공간은 초기 수행처에
한 사람의 불자가 여러 절에 소속된다. 한 가족이 모두 같은 절을 다니지 않는 경우도 많다. 다시 말하면 재적 사찰에 대한 소속감이 약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아마도 불교가 가지고 있는 신행의 방법의 특성 때문이다.초하루 혹은 보름 법회나 지장재일 관음재일 등의 재일을 통해 대중 법회에 참석하거나 특별한 경우 개인 기도를 올리는 것
산을 오르던 등산객이 부처님을 친견합니다. 길 가 돌무더기, 좌대 삼아 앉아 있는 부처님입니다. 쉼이 필요했던 그는 그 자리에 다소곳이 앉습니다. 그리고 가을바람을 맞으며 체로금풍(體露金風) 법문을 듣습니다.온 산하를 드러낸 가을바람은 그의 번뇌 망상을 나뭇잎 날리듯 사라지게 하고, ‘일체가 부처님 아님이 없다’는 부처님 가르침을 전합니다. ‘모든 가치는
일선사 경내에서 바라본 서울시 전경은 말그대로 일망무제. 이렇게 마음이 시원할 수 있을까?절정에 오른 태양이 이제 막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 삼각산[북한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보현보살이 앉아 계신 봉우리[보현봉]을 향한 발걸음은 가벼웠다. 산길이라곤 하지만, 나무나 돌로 만든 계단이 정연하게 놓인 까닭이다.산책로 같은 길을 따라 햇살에 반짝이는 낙엽, 이리
“내가 고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20년 전이나 15년 전만 일찍이 고국에 자유로이 갈 수만 있었더라도 나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작곡을 가르치고 외국과의 교류나 남북간의 음악교류, 그밖에 나의 오랜 소망은 남도창을 현대화시키는 작업이다. 나는 힘 있는 대로 음악을 통하여 남북교류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
버마(미얀마) 스님들이 거리로 나섰다. 상좌부 불교국가인 버마, 이곳에서 스님들이 거리로 나서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아침예불을 마친 스님들은 발우를 하나씩 들고 사원을 나와 줄지어 거리로 나선다. 재가불자들이 준비한 공양을 받기 위해서다. 불자들은 사원 앞거리에 앉아 스님들을 기다리다가 스님의 행렬이 지나가면 먹을거리를 스님의 발우에 말없이 넣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4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공동합의문에 서명한 뒤 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다. 남과 북은 10.4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을 채택했다. 다시 그 내용을 상기하면, ①6·15 공동선언 고수, 적극 구현 ②남북관계, 상호존중·신뢰관계 확고 ③남북 국방장관회담 올 11월 평양 개최 ④3~4자 정상 한반도 종전
불교계 안팎이 어수선합니다. 권력유착 의혹이 제기되고, 시시비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마치 불교가 위기를 맞은 듯합니다. 승단의 위기 때마다 참회와 화합을 강조하셨던 부처님께서는 사문(沙門)이란 “스스로 반성하여 부끄러워할 줄 알고, 남을 대해서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사분률』)고 강조하셨습니다.이는 지금의 사부대중이 수지해야 할 도리이기도 합니
차를 마시는 일은 참으로 즐겁기도 하거니와 바쁘거나 또는 지루한 일상생활 속에서의 유일한 탈출구이며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에게서의 ‘차 생활’이란 이미 하루도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처럼 된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나와 더불어 차를 마시는 여러 지인들의 생활 속에서도 어느덧 깊이 뿌리를 내리어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기호품 내지는 취미
『붓다의 발자국』어떤 종교든 그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고 그 문화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그들을 한울타리로 묶는 역할을 한다. 특히 지역을 옮겨 전파된 종교문화는 그곳 사람들의 오랜 역사 속에서 변용과 습합의 과정을 겪으며 유지되고 전승된다.따라서 오늘날 불교가 성행하는 미얀마와 티베트, 중국과 한국, 일본의 불교문화는 누가 봐도 한눈에 알아차릴 만큼
불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나, 불교에 입문하여 교리적으로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불교 입문서 『불교, 교양으로 읽다』(민족사). 이 책은 현대 정보화 사회에서의 불교의 역할에 대해 다루고 있다. 쉬운 용어와 비유를 활용하여 불교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하면서, 불교의 분류와 경전의 성립에 대해서도 가르쳐준다. 또한 석가모니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의 배경인 불교문화유산. 그러나 그 유산은 시대의 굴곡에 따라 방치되고 때로는 훼손되기도 했고, 지금은 박물관의 진열대에서 단순한 골동품으로 대접받고 있다. 불교계가 성보(聖寶) 관리 중요성을 항상 강조하고,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부 최응천 부장과 같은 관련 전문가들이 돋보이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최응천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신설 부서인
聞說如來頓敎門 문설여래돈교문恨不滅除令瓦碎 한불멸제영와쇄作在心 殃在身 작재심 앙재신不須怨訴更尤人 불수원소갱우인欲得不招無間業 욕득불초무간업莫謗如來正法輪 막방여래정법륜여래의 최상 법문 들어도 아득하여,못 믿고 비방하여 방해함을 한탄하네.마음이 업을 짓고 고통은 몸이 받네.남들을 원망 말고 자기를 반성하라.지옥에 들어갈 일 부르지 않으려면,여래의 바른 법을 절대
장미꽃은 아름다우니까 가시가 돋고, 가시가 돋으니 아름다운 것이다. 한 개체 전부가 아름답게 성장하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 개체가 아닌 딴 개체로 더러움이 있게 된 소이를 알아야 할 것이다. 전체성으로 보아 차별의 상대가 있는 까닭을 알아야 한다. 그런고로 아름다운 개체와 미운 개체를 초월하여 전체적 발전을 꾀하는 여래(如來)의 심정을 목표하고, 여래의
세계적인 명성의 ‘차중진품(茶中珍品)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들리는 ‘혜명차(惠明茶)’는 일찍부터 그 명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명차 중의 명차이다. 1915년 파나마 만국박람회에서 ‘차중진품(茶中珍品)’으로 공인받고 영예의 금상(金賞)을 수상한 이래 더욱 그 명성을 떨치고 있다. 그 동안 줄곧 거론해온 명차들과 마찬가지로 혜명차 또한 명산(名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