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토양과 명차의 품질의 관계 육우의 《다경(茶經)》 〈일지원(一之源)〉에 보면 “그 지질1)의 상품(上品)은 문드러진 돌멩이 땅에서 나며, 중품은 조약돌이 섞인 땅에서 나며, 하품은 누른 황토에서 난다〔其地, 上者生爛石, 中者生礫壤, 下者生黃土〕.”고 하였다. 오각농(吳覺農) 주편의 《다경술평(茶經述評)》의 고증에 의하면, 여기서
차나무는 생장, 발육 과정에서 대량의 수분을 필요로 한다. 차나무가 생리적으로 필요로 하는 물과 생태적으로 필요로 하는 물의 주요 공급지는 토양의 수분이며, 일반적으로는 전답(田畓) 용수량의 70~80%가 차나무 생장에 가장 적합하다. 수분은 차나무의 신진대사를 정상화할 뿐만 아니라 갓 돋아난 차싹이 머금을 영양소의 형성과 저장에 아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차밭의 공기 중에 습도가 많으면 자주 운무가 생긴된다. 운무는 차밭의 내리쬐는 햇볕의 광질(光質)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간접광(間接光)’을 증가시키는 작용을 하며, 차나무의 광합성작용에 아주 유리하여 관목형 차나무의 찻잎을 부드럽게 하고 탄성을 높이는 데 좋다. 차나무에 직사광선이 비치는 것은 차나무 생장, 발육에 금물이다. 그래서 반사광(反射光)을 통해 간접적으로 빛을 들게 하여야한다. 명차가 재배되는 지역은 대부분 강우량이 풍부하고 날씨가 비가 오다, 개다를 자주 반복하여 상대적으로 공기 중의 습도가 많은 편이다. 아울러 그곳의 토양은 수분을 많이 함유하고 차나무의 생장이 왕성하며, 카페인과 방향물질의 함량이 비교적 높은 편이다. 그러므로 차를 만들었을 때 향기는 좋고 많이 순후(醇厚)하여, 품질이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다.
1. 명차(名茶)의 생태(生態) 중국 속담에 “고산(高山) 운무(雲霧)는 좋은 차를 잉태하고, 좋은 산과 좋은 물에서 명차가 난다.”고 하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소개하면서 문득, 필자가 예전에 본고 편집장의 부탁으로 불교와 연관된 중국의 차문화를 이란 제목으로 연재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연재를 마치면서 본고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에 중국 공산당과 정부에서는 차의 생산을 매우 중요시하게 되었다. 당시엔 중국의 찻잎이 중국 내지 인민들의 음차 소비뿐만 아니라, 해외수출품으로 아주 인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공내전을 막 종식하고 건국한 중국의 경제는 개발도상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이렇다 할 경제적 성장을 이루지 못한 중국에서 차는 그야말로 서양열국을 향한 유일한 최고의 해외수출 품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공산당과 정부는 그들을 겨냥한 새로운 향과 맛의 명차 개발에 관심과 노력을 하게 되었다. 특히 중국 공산당 제11회 3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 이후에는 신창명차는 더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속속 탄생하게 되었다. 그 수가 실로 어마어마하다.
안계철관음(安溪鐵觀音)은 복건성(福建省)의 안계(安溪)일대에서 생산되며, 그 유명한 오룡차와 더불어 오룡차(청차)계열의 대표적인 명차이다. 철관음의 특징은 찻잎의 외형이 아주 견고하고 잎이 고르게 두툼하다. 찻잎의 색깔은 산뜻하고 밝으며 향기가 깊고 은은하다. 찻잎을 우려낸 탕색(湯色)은 금황(金黃)색을 띠고 있으며, 차를 다 우려낸 뒤의 엽저(葉底)는 부
5. 청조(淸朝)의 명차(名茶) 청나라의 명차에는 명나라를 그대로 계승․발전해 내려온 무이암차(武夷岩茶), 황산모봉(黃山毛峰), 휘주송라(徽州松蘿), 서호용정(西湖龍井), 보이차(普洱茶) 등이 있으며, 새로 창제(創製)된 명차는 녹차(綠茶), 황차(黃茶), 흑차(黑茶), 백차(白茶), 홍차(紅茶), 오룡차(烏龍茶:靑茶) 등의 6대 차
무이암차(武夷岩茶)1)는 명조(明朝) 때의 명차였을 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중국 최고 명차 중 하나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만 오룡차(烏龍茶)의 원조(元祖)이기도 하다. 무이암차는 무이산(武夷山) 주변 60km 이내에서 생산된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지금의 복건성 무이산시(武夷山市) 숭안현(崇安縣)이다. 무이산은 자연풍광이 수려할 뿐 아니라 역사적인 문화유산이
명대의 도륭(屠隆)은 만력(萬曆) 18년(1590) 전후에 편찬한 《고반여사(考槃餘事)》 에서 ‘소주호구(蘇州虎丘)’·‘소주천지(蘇州天池)’·‘양선차(陽羨茶)’·‘육안차(六安茶)’·‘서호
3. 명조(明朝)의 명차 명(明)나라는 앞에서 거론한 바와 같이, 중국차문화사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기를 맞이한 시기이다. 즉, 명 태조 주원장이 사대부들의 차의 사치를 막고, 차농(茶農)들의 농번기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그 전대(前代)인 당(唐)·송(宋)·원(元)에서 유행했던 ‘단차(團茶)’1)와 말차(末茶)
3. 원조(元朝)의 명차 원(元)나라는 중국 역사상 최초로 한족(漢族)이 아닌 북방의 이민족(異民族)이 중원을 통일하여 세운 나라이다. 원나라를 세운 몽고족은 그 자체가 본래 중국 내지의 한족에 비해 그리 차를 즐기는 민족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역대 중국 차 문화사를 논하는 자리에선 늘 건너뛰기 일쑤였다. 그래서 사실 차에 관한 기록이나 관련된 사료가
2. 송조(宋朝)의 명차 송대의 명차 또한 당대(唐代) 못지않게 많다. 《송사(宋史)》〈식화지(食貨志)〉에 의하면 “차의 생산은 동남쪽이다. …… 고저(顧渚)는 돌 위에서 자라나는 것이며, 이를 일러 ‘자쟁(紫箏)’이라 한다. 비릉(毗陵)1)의 양선(陽羨), 소흥(紹興)2)의 일주(日鑄), 무원(
1. 당조(唐朝)의 명차 앞에서도 여러 차례 거론한 바 있지만, 중국의 공차(貢茶) 기록은 이미 오래 전 주(周) 왕조에서부터 보인다. 그러나 정식으로 공차를 시행한 것은 당(唐) 왕조에서부터였기 때문에 육우(陸羽)의 《다경(茶經)》을 비롯한 중국의 여러 문헌에서는 ‘중국 명차의 출현’을 당조를 시점으로 하여 소개하고 있다. 당대(唐代
6. 청조(淸朝)의 공차(貢茶) 청(淸)나라 때에는 차(茶) 제조가 대부분 홍청(烘靑)과 초청(炒靑)1) 위주로 이루어졌다. 이때에 이르러 공차 제조방법이 더욱 섬세하고 정교하게 발전되어, 산차(散茶)2)더라도 찻잎의 형태가 그야말로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뿐만 아니라 오룡차(烏龍茶), 홍차(紅茶), 흑차(黑茶), 화차(花茶) 등 새로운 차 종류를 창제(創製
(4) 원조(元朝)의 공차(貢茶) 원나라 때의 공차(貢茶) 기록은 별로 많이 남아있지 않다. 왜냐하면, 이 시기는 역대 다른 왕조에 비해 백성들의 생활이 안정적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대내외적으로도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문화적 발전보다는 군사적 측면만 강조되었던 시기인 만큼, 국가적으로 굉장히 불안한 시기였다. 더구나 차문화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타 왕조
(3) 송조(宋朝)의 공차(貢茶) 송나라 때의 공차(貢茶)는 앞 시대였던 당대(唐代)의 공차를 기반으로 하여 더욱 진화, 발전하게 되었다. 의흥(義興)의 양선차(陽羨茶), 호주(湖州) 고저(顧渚)의 자쟁차(紫箏茶) 및 사천의 몽정차(蒙頂茶)를 당대에 이어 지속적으로 최상의 공차로 유지한 것은 물론, 새롭게 ‘건차(建茶)’를 공차의 최상
(2) 당조(唐朝)의 공차(貢茶) 당나라 때는 공차가 불규칙하게 이루어진 전대의 왕조들과는 달리 정부의 주도적인 관리 아래 좀 더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진연(陳椽) 주편의 《차업통사(茶業通史)》에 의하면, “당 현종(玄宗) 천보(天寶 : 742년~755년) 연간에 남악(南岳)에서 공차를 하는데, 관부의 성화로 차의 홍배(
2. 명차(名茶)의 발전과 변화과정 가. 명차(名茶)와 공차(貢茶) 중국 역대왕조에서 황제에게 바쳐진 조공한 명차들은 그야말로 모두 정사에 기록된 역사적인 명차(名茶)에 속한다. 이외에도 비록 공품(貢品)의 반열에는 끼지 않았을지라도 중국 전역의 각 차산지에서 생산된 품질이 우수한 차들이 있는데, 모두가 당대(當代)의 문인(文人)과 아사(雅士) 또는 명인(
3. 명차의 분류 ‘명차(名茶)의 분류’는 앞에서 거론한 ‘명차의 개념’과 ‘명차의 명명’에서 ‘명차’가 일반 차와 어떻게 다르게 차별화되고 명명되는지 밝힌 바 그대로이다. 특별히 ‘육대차류(六大茶類)’의 분류에서 벗어나서 달리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역사에 등장하는 명차(名茶)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은 주로 그 생산지의 지명이나 혹은, 그 속한 지역의 산수가 빼어난 명승지에서 기인하여 명명한 차들이 많다. 그 중에는 단명(單名)으로 된 것도 있고, 복명(復名)으로 된 것도 있는데, 단명은 단순하게 생산지 지명으로 명명한 것이고, 복명은 지명이나 명승지를 표시함은 물론 차의 특징까지도 복합적으로 나타낸
중국은 차나무의 원산지이며, 최초로 차나무를 발견하였고, 아울러 차를 약용(藥用) 및 음료로 이용하기 시작한 최초의 나라이다. 그러므로 중국은 차나무의 생물학적 역사는 물론, 차의 생산과 음차문화의 역사가 세계에서 가장 유구한 나라이기도 하다. 전설에 의하면, 야생 차나무의 발견은 이미 신농(神農)시대에 이루어졌으며, 아울러 의약품이 결여되었던 당시에는 차